고마운 광천라이온스클럽
서해의 명산 오서산(烏棲山)은 삼국시대부터 산신제를 봉행해 온 유서 깊은 산이다.
산신제의 유래는 약 2300여 년 전,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진시황(秦始皇)이 태산에서 봉선(封禪) 의식을 거행한 데서 비롯됐다.
봉(封)은 태산 정상에 흙을 쌓아 단을 만들고 천신(天神)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고, 선(禪)은 태산 아래에서 땅을 정결히 해 지신(地神)에 제사를 드리는 의식이다. 이는 제왕의 권위를 천지신명으로부터 인정받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에서 시작됐다.
진시황은 자신만이 진정한 천자(天子)라 자칭하며 “자기에게 걸맞은 칭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설상의 수인(燧人)·복희(伏羲)·신농(神農)으로 구성된 삼황(三皇)의 ‘황(皇)’ 자와,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으로 구성된 오제(五帝)의 ‘제(帝)’ 자를 따 스스로를 최초의 ‘황제’라 칭했다. 그러나 폭정을 일삼다 결국 단명 왕조로 끝나고 말았다.
그 후 통일 왕조를 다시 개창한 한 고조 유방은 태산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했고, 이어 한 무제(武帝) 유철이 세 번째로 태산에서 봉선 의식을 올렸다. 한 무제는 이후 “통일 왕조의 황제라 하더라도 아무나 봉선 의식을 해서는 안 되며, 태평성대를 이룩한 군주만이 이를 행해야 한다”는 유훈을 남겼다.
그러나 한 무제 이후 역대 황제들은 너나없이 봉선 의식을 거행하며 스스로 천명(天命)을 받은 황제라 자칭했다. 이러한 봉선 의식의 형식과 사상은 점차 산신제와 같은 제의로 변용됐고, 중국 문화의 영향권에 있던 우리나라 역시 삼국시대 초기에 이를 받아들여 산신제를 봉행하게 됐다.
우리 고장의 오서산은 전통적으로 삼한(三韓) 오악(五岳) 가운데 하나로 전해지며, 백두산·묘향산·금강산·지리산과 함께 언급돼 왔다. 백제 왕실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시화연풍(時和年豐)을 기원하며 산신제를 봉행했는데, 그 장소는 장곡면 광성리 일대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양광도(경기·충청) 안찰사(현 도지사) 주관으로, 조선시대에는 홍주목사 주관으로 산신제가 이어졌다.
그러나 1897년 고종이 환구단(圜丘壇)에서 봉선 의식과 유사한 천신제를 올리고 황제로 등극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이후, 나라 안팎의 혼란 속에서 2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오서산 산신제도 그 맥이 끊기고 말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100여 년 동안 중단 상태에 놓였던 산신제는 근래 광천산악회 주관으로 오서산 정상에서 다시 봉행되기도 했으나, 눈길 등산의 위험성과 산악회 활동의 둔화로 이마저 중단됐다.
이를 광천라이온스클럽(회장 한학재)이 2018년 차대식 회장 재임 시절, 당시 신주철 광천읍장의 후원을 받아 부활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산신제는 눈길의 위험을 피해 산 아래 상담마을에서 봉행되고 있는데, 참여한 주민들에게 떡국을 대접하는 점이 특징이다. 떡국 한 사발이야 값으로 따지면 크지 않지만, 덕담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귀중한 자리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필자는 역사·문화·풍속에 관심이 많은 아마추어 연구생에 불과하지만, 오랫동안 산신제 부활에 대한 열망을 품어 왔다. 그러나 스스로 능력이 부족해 늘 마음만 품고 있던 차에, 광천라이온스클럽이 자발적으로 귀중한 산신제를 봉행하며 2000년의 맥을 이어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중국에서 산의 대명사가 태산이라면, 우리나라 산의 대명사는 백두산이다. 반만년 역사의 시발점이자 성산(聖山)이며 영산(靈山), 조산(祖山)이다. 하루빨리 통일이 이뤄져 백두산에서 역사적인 산신제가 다시 봉행되고, 그 함성이 백두대간을 타고 온 누리에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