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뚝심으로 완성된 정직한 식품, 국내외 입맛을 훔치다
농업회사법인 ㈜백제의 ‘상생 경영’
2026-02-05 이정은 기자
■‘원료가 곧 철학’,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다
1978년 ㈜백제물산으로 첫발을 뗀 백제의 역사는 대한민국 즉석식품의 진화사와 궤를 같이한다. 초창기 당면부터 냉면, 떡국을 거쳐 현재의 주력 상품인 쌀국수에 이르기까지 백제가 지켜온 제1원칙은 바로 ‘원료’이다. 김미순 회장은 초창기 시절을 회상하며 말한다.
“처음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시장이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현장을 겪으며 점차 ‘우리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순간 건강과 직결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철학이 생기게 됐죠.”
그때부터 백제는 ‘원료 일 순위’ 원칙을 세웠다. 떡국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햅쌀을 엄선해 도정하자마자 즉시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쌀국수 역시 기름에 튀기지 않은 건조면을 독자 개발해 건강함과 담백함을 동시에 잡았다. 이러한 고집은 쌀국수와 떡국을 주축으로 우동, 수제비 등 100여 종의 제품으로 확장됐다.
김철유·김범유 두 대표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 ‘위생, 원료(정직함), 맛’이라는 3대 원칙을 사업의 뼈대로 삼았다. 최근에는 ‘쌀 100% 수제비’ 출시를 준비 중이다. 김철유 대표는 “10개 제품을 내놓으면 하나 성공하기도 힘든 게 시장의 현실이지만, 첨가물을 줄이고 품질에 집중할 것”이라며 강고한 신념을 내비쳤다.
■ 벼랑 끝 세운 3개 공장, 엄격한 품질관리
오늘의 성공 뒤엔 뼈아픈 시련이 있었다. 2007년 찾아온 부도 위기는 백제를 뿌리째 흔들었다. “극한의 공포를 짊어지고 15년을 버텼다”는 김미순 회장은 2008년부터 직접 경영권을 쥐고, 백제를 알리기 위해 10여 년간 전국의 식품박람회를 발로 뛰었다. 이러한 절박함은 2013년 제1공장, 2018년 제2공장, 그리고 2023년 자동화 설비를 갖춘 쌀국수 전용 제3공장 준공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또한 HACCP(해썹) 인증 과정의 고충도 컸다. 국수·떡·면·냉동면 등 4가지 분야의 인증을 한꺼번에 받아내는 것은 중소기업으로서 엄청난 도전이었지만, 백제는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으로 여겼다. 김범유 대표는 해썹 인증의 본질은 단순 취득이 아닌 ‘지속적 관리’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 기준이 있어야 소비자에게 떳떳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김범유 대표는 “품질 관리를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대기업 출신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품질팀을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 특히 삼성스마트팩토리 지원사업을 통해 공정을 전산화하고 원격 시스템을 구축해, 생산 과정의 미세한 문제라도 발견되면 전량 폐기하는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관리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코스트코 입점과 FSSC22000(국제공인식품안전인증체계), 미국 FDA 승인 등으로 이어졌다.
김철유 대표는 “보통 자동화가 되면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하시는데, 설비가 확충되면 생산 라인이 늘어나 오히려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하게 된다”며 지속적인 투자와 고용 창출의 선순환에 대해 설명했다.
■‘나눔의 대물림’, ‘가족주의 복지’ 실현
백제의 경영은 공장 담장을 넘어 지역사회로 흐른다. 김미순 회장은 1978년 창업 초기, 본인의 양말 한 켤레조차 사 신기 힘들었던 시절부터 당면을 나누며 기부를 시작했다. 이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5년에 걸쳐 1억 원을 기탁하고 △홍성단기청소년쉼터 △집수리봉사단 △홍성사랑장학회 △파란천사홍성군지회 △서울역쪽방상담소 △천안다함께돌봄센터 △꿈이자라는공부방 등 전국 곳곳의 소외계층에게 백제의 온기를 전했다.
또, 김 회장은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파트 임대료를 5년간 부담해 주는 등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마주할 때면 마치 내 일처럼 보살펴왔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달 23일에도 김 회장은 지역 이웃을 위한 명절 준비로 분주했다.
“곧 새해 명절이라 오늘은 돼지불고기 50근을 준비했어요. 다음 주엔 소불고기도 할 거고요. 이 반찬은 ‘파란천사’를 통해 이웃들에게 전달될 거예요.”
어머니의 ‘나눔 DNA’는 아들 김철유 대표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김 대표는 5년 전 천안결식아동센터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우연히 받은 뒤부터, 천안은 물론이고 홍성의 결식아동들에게 명절마다 정기적으로 식품을 전달하고 있다.
“어느 날 천안에 있는 결식아동센터에서 구매 관련 문의 전화가 왔는데, 그 전화를 계기로 결식아동들을 돕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 군에도 배고픈 아이들이 있을 텐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군에 전화해 결식아동들에게 저희 식품을 전달하게 됐어요.”
백제의 따뜻한 시선은 내부 직원들에게도 향한다. 자녀 1명당 매월 20만 원씩 10년간 지급하는 육아수당은 김 회장과 두 대표의 강력한 의지다. 2024년 김 회장은 두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기면서, “직원들 육아수당 못 줄 정도면 경영하지 말라”고 말했을 정도다. 또, 그는 희귀병 자녀를 둔 직원에게 수술비 3천500만 원을 선뜻 건네며 위기를 함께 넘기기도 했다.
김철유 대표는 “회사가 더 성장하면 자녀들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하고 싶다”며 “홍성군 내에서 직원 월급을 가장 많이 주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제 꿈”이라며 포부를 전했다.
■ 브랜드 가치로 ‘돈쭐’나는 기업을 꿈꾸다
품질을 위한 엄밀함과 48년간 이어진 선행, 이러한 백제의 진심은 전국의 소비자들로부터 따뜻한 회신이 되어 돌아왔다. 음식을 못 넘기던 101세 어르신이 백제 쌀국수를 접한 뒤 “나를 위해 만들어진 음식 같다”며 직접 전화를 걸어 광고 모델을 자처한 일이나, 소아암 투병 중인 자녀가 유일하게 백제의 제품만 먹는다며 고마움을 전해온 에피소드는 회사 내에서도 유명하다. 당시 김 회장은 백만 원 상당의 제품 쿠폰을 전달하며 화답했다. 이러한 진심 어린 소통 때문일까, 백제에는 소비자들의 정성 어린 감사 편지와 전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백제가 위기에 놓여있던 시절 학자금 대출을 받아 경영학을 전공하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던 두 아들은, 이제 백제를 ‘사회와 동행하는 브랜드 가치 1위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이어 김 회장은 “소비자들이 요즘 ‘돈쭐*내러 간다’고 표현하는, 그런 기업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돈쭐: ‘돈’+‘혼쭐’의 변형된 표현. ‘혼쭐이 나다’라는 원래 의미와는 달리, 정의로운 일 등을 함으로써 타의 귀감이 된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자는 역설적 의미로 사용된다.
백제는 이미 국내 40여 개 총판을 넘어 미국·일본·중국 등 16개국에 진출했으며, 유럽과 캐나다 시장 확장을 준비 중이다. 김철유 대표는 “해외 전략의 핵심은 ‘현지화’와 ‘한국의 맛’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범유 대표는 “해외 바이어들은 한국만의 특색이 담긴 제품을 원한다”며 시식회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김치쌀국수’를 예로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미순 회장은 소비자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멈추지 않고 발전해 더 만족스러운 제품을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지자체를 향해 “전에는 충남경제진흥원에서 지역에 큰 축제가 열리면 농식품가공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해 아쉽다”면서 “중소기업들에게 제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다시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끝으로 김 회장은 두 대표에게도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절박함을 가지고 끝까지 버텨라. 힘들어도 끝까지 버티는 것 말곤 답이 없다. 힘든 일이 생기면… 그래도 끝까지 가라. 내가 했던 것처럼.”
절벽 끝에서 꽃을 피운 김미순 회장의 ‘버티는 힘’은 이제 두 아들의 ‘젊은 경영’과 만나 백제의 새로운 5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직한 원료로 사람의 몸을 보하고, 따뜻한 나눔으로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백제의 행보는 한 기업의 성장을 넘어 우리 사회에 ‘상생’이라는 가장 맛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