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원짜리의 가치, 끝내 남는 것은 무엇인가

2026-02-12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strong>최명옥</strong><br>NIA

사람의 몸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생물학적 성분 자체는 단돈 몇천 원에 불과할지 모르나, 장기 이식 비용과 생명 유지의 가치를 계산하면 한 사람의 몸은 100억 원을 호가하는 거대한 자산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수십억 원대의 ‘기초 자산’을 보유한 자산가인 셈이다. 이 장부는 우리가 숨 쉬는 매 순간 기록되며,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무한히 확장되기도, 허무하게 탕진되기도 한다.

최근 지인 A씨의 사례는 이 자산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지인 B씨가 자신의 신장 하나를 나누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수술까지의 의학적 난관과 이후의 불편함은 여전히 험난하지만, 억만금을 준다 해도 바꾸기 힘든 신체 일부를 대가 없이 내어주려는 숭고한 결단 앞에서 A씨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우리는 종종 부모를 위해 간을 떼어주는 자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는 자신의 자산을 부모의 생명과 맞바꿈으로써 ‘효(孝)’라는 고귀한 가치를 각인시킨 선택이다.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장기를 기증하는 이들 역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재를 ‘희망 자산’으로 치환하고 떠난 이 시대의 성자들이다. 반면, 극심한 가난 때문에 장기를 매매해야 하는 비극적 현실은 자본의 논리가 생명의 존엄을 압도하는 아픈 단면이자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적 부채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장부에 적립되는 진짜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부모가 물려준 올바른 가치관, 그리고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같은 무형의 자산들이다. 필자에게도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자산이 있다. 홀로 계신 아버지와 나누는 소소한 대화, 돌아가신 어머니의 지혜, 요양병원에서도 자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시부모님의 마음은 내가 삶의 풍파에 휘청일 때마다 나를 붙잡아주는 가장 확실한 담보가 된다.

하지만 중독 상담 현장의 풍경은 이와 대조적이다. 최근 ‘틱톡 라이트’와 같은 플랫폼은 영상 시청이나 친구 초대를 조건으로 현금을 지급하며 인간관계를 단순한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가상의 작물을 키우면 실물을 배송해 주는 게임형 커머스들 또한 클릭 몇 번의 보상을 미끼로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다.

이러한 ‘디지털 채굴’에 중독된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리는 알림의 감옥에 갇혀 산다. 밤늦도록 청색광(블루라이트)을 마주하며 수면 장애를 겪으면서까지 소액의 포인트에 매달리는 행위는, 미래의 건강과 집중력을 가불(假拂)해 무의미한 숫자에 베팅하는 가장 밑지는 장사이다.

물론 현실의 장벽은 차갑다. 통장의 숫자가 넉넉하길 소망하는 것은 부끄러운 물욕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중한 관계마저 소원해지기 쉽다는 진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력은 단순히 돈의 액수를 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게 돕는 현실적인 ‘뿌리’다.

결국 인생을 지탱하는 것은 경제력, 관계력, 건강력이라는 세 가지 축의 정교한 균형이다. 정당한 노동과 재테크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가족을 향한 숭고한 책임이다. 다만 그 과정이 목적을 잃고 중독으로 흘러, 정작 지켜야 할 건강을 해치거나 사람 사이의 온기를 탕진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2월의 찬바람 속에서도 우리가 따뜻할 수 있는 이유는 통장의 잔고 때문만이 아니다. 가슴 속에 울려 퍼지는 부모님의 말씀, 온기를 나누는 관계의 힘, 이를 지탱하는 단단한 일상의 루틴 덕분이다.

오늘 당신의 인생 장부에는 무엇이 적립되고 있는가? 진정한 부자는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100억 원의 가치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