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로 함몰되어 가는 농민노동과 삶의 다양한 정서 듬뿍 담다

주위의 많은 이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심호택 시인의 첫 시집 〈하늘밥도둑〉

2026-02-12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strong>정세훈</strong><br>시인,

63세 되던 해인 2010년 1월 예기치 못한 불행한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심호택 시인이 1992년 말 첫 시집 <하늘밥도둑>을 창작과비평사에서 ‘창비시선’ 109번째로 출간했다.
 
‘하늘밥도둑’은 땅강아지를 일컫는 말로 하늘강아지, 땅개비, 도루래, 돌도래, 꿀도둑, 누고 등으로도 호칭한다. 몸 전체가 미세한 털로 덮여 있어 땅속에서도 흙이 묻어나지 않는다. 앞다리는 불도저 날처럼 넓적하게 발달해 있어서 땅을 잘 팔 수 있다. 이 앞다리는 주로 땅을 팔 때 사용하지만 물에서 헤엄칠 때도 사용한다. 머리와 가슴이 일체형으로 경계가 불분명하며, 날개가 작아 퇴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없이 잘 날아다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시인이 비교적 늦은 나이인 45세에 펴낸 시집은 표제 시 ‘하늘밥도둑’을 비롯해, 이 땅의 산업화로 인해 점차 함몰되어 가는 농촌 농민노동과 삶의 다양한 정서를 적나라하게 담은 가편의 시편을 듬뿍 담아 독자와 주위의 많은 이들로부터 호평과 상찬을 받았다. 

“망나니가 아닐 수야 없지/날개까지 돋친 놈이/멀쩡한 놈이/공연히 남의 집 곡식줄기나 분지르고 다니니/이름도 어디서 순 건달 이름이다만/괜찮다 요샛날은/밥도둑쯤 별것도 아니란다/우리들 한 뜨락의 작은 벗이었으니/땅강아지, 만나면 예처럼 불러주련만/너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살아보자고, 우리들 타고난 대로/살아갈 희망은 있다고/그 막막한 아침 모래밭 네가 헤쳐갔듯이/나 또한 긴 한세월을 건너왔다만/너는 왜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 거냐?/하늘밥도둑아 얼굴 좀 보자/세상에 벼라별 도적놈 각종으로 생겨나서/너는 이제 이름도 꺼내지 못하리/나와 보면 안단다/부끄러워 말고 나오너라”
 

시집에 대해 시인 고은은 ‘시인 호택에게 주는 말 몇 마디’라는 제목의 발문에서 “호택이 자네 첫 시집이 어찌 이다지도 서투른 데 없이 폭삭 익어버렸는가. 첫 시집의 운명으로서는 여간 불운이 아닐세, 바로 이점이”라고 감탄하며, “자네 시를 쭈욱 읽어보는데 이제는 거의 없어진 것들이 살아서 제대로 꽃을 피워내고 푸우하고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여간 눈물겹지 않았다네. 어찌 요즘의 노래꾼으로 이렇게도 능란하기 이를 데 없는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김종철은 뒤표지글에서 “그의 시는 많은 경우 하늘과 땅의 순리에 적응하며 살았던 어떤 ‘가난한’ 삶에 대한 절절한 기억에 바쳐지고 있다”고 평했으며, 시인 이시영은 “우리는 이 시들에서 아직 자본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사슴노루’ 같은 수많은 싱싱한 자연적 인간들의 발화와 그들을 낳고 기른 생명력 넘치는 대지의 서정을 실감한다”고 논했다. 시인 안도현은 “시인의 고향마을에 가서 아구탕에 소주 한잔 크윽,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얼큰한 아구탕처럼 그의 시는 알맞게 매우면서도 삶의 따스한 곳을 요모조모 뛰어나게 짚어낸다”고 밝혔다.

1947년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에서 출생한 시인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폴 베를렌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재학 중 반독재 민주화 지향의 동아리 ‘황마회’와 대학 내 ‘화전 문학회’ 활동을 했다. 1991년 계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빈자의 개’ 등 여덟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하늘밥도둑>, <최대의 풍경>, <미주리의 봄>, <자몽의 추억> 등과, 유고 시집 <원수리 시편>이 있다. 조선대학교와 원광대학교에서 불문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민족문학작가회의 전북지회 창립회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2010년 1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