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가신청난비,백월산정상 홍주청난사 앞으로이전
백월산 정상 역사의 산실로 자리매김
홍가신청난비가 철도시설관리공단 주관으로 백월산의 홍주청난사 앞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9백년 유구한 홍주시대의 영광과 회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홍주성은 국난극복과 민족정신을 보여준 여러 사건들로 홍성이 충절의 고장임을 대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몽학의 난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임진왜란 때 난중의 난이라 일컬어지는 이몽학의 난은 1596년(선조 29) 부여에서 동갑계를 사주하고 굶주린 농민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켜 홍산 관아를 습격하고 수천의 무리를 이루어 임천과 정산, 청양, 대흥군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홍주성을 거쳐 한양으로 진격하려 했던 것이다.
그 해 7월 10일에는 홍주성을 공격하였으나 당시 홍주목사 만전 홍가신은 무장 임득의, 방명현, 전병사 신경행, 충청수사 최호 등과 함께 반란을 평정하였다.
그리하여 만전 홍가신은 1등 공신으로 책록 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영구히 알리기 위해 1641년(인조 19년) 예산방면 21번 국도변(일명 말무덤)에 비를 세우고 1984년에는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65호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국도 확포장으로 주변 지형이 높아져 면모가 훼손되고 찾아오는 방문객이 드물어 이전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중 장항선 철도가 옆을 통과하게 되면서 유족 및 전문가의 자문과 충청남도 문화재위원회 허가를 받아 철도시설관리공단 주관으로 백월산 홍주청난사 앞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로써 백월산 정상에는 최영장군 처럼 신의 반열에 오른 청난 5공신의 목상을 모신 홍후만전묘와 아랫자락에는 사당인 홍주청난사가 있고 그 앞에 홍가신청난비를 옮기게 되어 이제 백월산 일대가 산신으로 추앙받는 홍가신 관련 시설이 모두 자리하게 되면서 역사의 산실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