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3 >
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2013-07-04 한지윤
"헤헤, 뭘요. 하긴 다들 저 보구 얼굴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왕순이 한발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래요."
왕순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한 미애는 넋 나간 표정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붉으죽죽한 비곗살에 파묻혀 눈 코 입의 존재가 불분명한 얼굴이 역겨운 애교를 쥐어짜고 있었다. 그 눈빛을 피해 얼굴을 돌리는 왕순의 팔에 닭살이 돋았다.
"이리 따라 오세요."
눈웃음을 치며 미애가 앞장서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가스를 새것으로 바꾸는 왕순의 모습을 지켜보던 미애가 갑자기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왕순을 불렀다.
"아저씨이-"
점심 때 먹은 라면이 뱃속에서 곤두서기 시작했다.
"저 오늘, 한가해요오-."
으악! 미애가 그 육중한 몸을 꼬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끼리 넓적다리만한 두 팔은 꼬이지 않아 물에 불린 듯한 손만 겨우 맞잡으며 그녀는 끙끙 신음소리를 냈다.
"그래요?"
반갑다는 듯한 왕순의 반문에 황홀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는 갑자기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서 낮잠이나 한 장 때리면 되겠군요."
왕순은 태연히 말했다. 순간 미애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왕순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이구. 난 죽었다.'
그러나 미애는 다시 표정을 바꾸고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왕순에게 다가섰다.
"저도 알고 보면 괜찮은 여자예요."
미애의 육중한 몸이 돌진해왔다.
"앗! 왜...왜 이러는 거예요!"
왕순은 기겁을 해서 슬슬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아저씨 정말 잘 생겼다, 어머! 요 코 좀 봐.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을까!" 왕순의 공포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애가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왕순의 코끝에 손을 대었다. 어물어물 하다가는 꼼짝없이 압사할 지경이었다. 왕순은 비명을 지르며 옥상계단을 뛰쳐 내려갔다.
"지옥탈출이 바로 이런 거구만."
오국장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무래도 약속을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 김! 한일무역 정상무한테 전화 좀 넣어줘."
"네. 알겠습니다."
여비서의 빠른 말씨가 인터폰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며 그는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언제부터이던가. 그렇게 속 깊고 의젓하던 아들 녀석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 그는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듯 팽팽한 아들의 눈빛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국장님. 전화 연결됐습니다."
"정상무님.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점심 약속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요. 모처럼 자리를 함께 해서 국장님 의견을 들어볼까 했는데 사정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다음에 잊지 말고 자리 마련하는 겁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