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2 >

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2013-09-13     한지윤

자기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 돼. 내가 그런 식으로 매도당하는 건 참을 수 없어.'
현우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악물었다. 물끄러미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경우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현우의 얼굴을 보고는 불안해졌다.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 같은데 몹시 화난 표정이었다.
경우는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는 묵묵히 현우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래. 들어가자. 들어가서 부딪치는 거다. 내가 원래 글러먹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결심을 굳힌 듯 현우가 경우의 어깨를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가자. 나쁠 거야 없겠지."
경우는 통증 때문에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일어섰다.
아버지는 엄한 표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데 대한 안도감과 제까짓 녀석이 별 수 있겠냐 하는 생각이 교차함을 느끼며 현우를 맞은편에 앉히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눈을 내리깔고 앉아 있는 아들의 얼굴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품안의 자식이라더니 코밑에 가뭇가뭇 수염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문을 꺼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마. 아주 끝장낼까도 생각했지만 네 인생이 불쌍해서 봐주는 거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새 출발 해야 한다."
"그래. 아버지가 이번엔 애 많이 쓰셨어."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마운 일이군요."
훈계조의 권위적인 태도에 짜증이 나서 현우가 내뱉었다.
"입 다물고 들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애써 자제하며 아버지가 말했다.
"경우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하게 됐으니까 동생 얼굴에 먹칠하지 말도록 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앞으로 또다시 싸움질 하면 그땐 끝장이야. 명심하고 행동해."
불안한 심정으로 현우를 응시하던 아버지는 담뱃불을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자습 시간의 교실은 시장바닥을 방불케 했다. 벌써부터 도시락을 까먹는 아이들, 상대의 팔목을 움켜쥐고 얼굴이 시뻘개져 끙끙대는 두 아이를 놓고 빙 둘러서서 응원에 열을 올리는 아이들, 못 보게 되어 있는 주간 잡지를 보며 낄낄대는 녀석들, 교실 뒤쪽의 거울 앞에는 여학생들 서넛이 안 보인다느니, 비키라느니 하면서 머리를 빗는다,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호들갑이었다. 아침자습 시간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공부하는 학생은 한둘이나 있을까 말까했다.
"야! 떴다!"
망보는 당번으로 정해진 듯한 작은 아이가 소리치며 들어와 맨 앞자리에 앉자 후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하지만 온 교실에 진동하는 김치 냄새와 팔씨름에 흥분해 씩씩대는 벌건 표정은 쉽게 감추어지지 않았다.
문이 열리며 강선생이 출석부를 옆에 끼고 들어서고 그 뒤를 따라 머리를 짧게 깎은 현우가 가방을 메고 들어섰다. 아이들이 수군댔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인사에 눈인사로 답을 한 강선생은 옆에 서있는 현우를 한 번 쳐다보고는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