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집을 에워싸듯 산봉우리 이루고 있네

장희구 박사의 번안시조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19>

2014-05-15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시인의 시상은 아주 미세한 것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봉황이나 매 같은 날짐승도 생각해 내곤 했다. 요즈음으로 보면 로케트나 우주선과 같은 과학문명의 산물도 생각해냈을 것 같고, 부처님이나 메시아를 직접 만나 대좌하는 생각까지도, 그런 글까지도 조금도 주저함 없이 썼을 것 같다. 아주 맑은 날씨였지만, 차가움이 감도는 어느 날 매화를 보았고, 눈을 보면서 아름다운 시상을 떠올렸다. 시인은 달을 기다리다가 매화는 학인 양 야위어 있고, 오동에 의지하니 사람 또한 봉황임을 알겠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淸寒(청한)
매화는 달 기다리다 학인 양 야위었고
오동에 의지하니 사람 또한 봉황이네
밤새운 매서운 추위 산봉우리 이룬 눈 집.

待月梅何鶴 依梧人赤鳳
대월매하학 의오인적봉
通宵寒不盡 遶屋雪爲峰
통소한불진 요옥설위봉

눈이 집을 에워싸듯 산봉우리 이루고 있네(淸寒)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달을 기다리다 매화는 학인 양 야위어 있고 / 오동에 의지하니 사람 또한 봉황임을 알겠네 // 밤새도록 모진 추위 그치지 않더니만 / 눈이 집을 에워싸듯 산봉우리 이루고 있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매화는 학인 양 야위어 사람은 봉황인가, 모진 추위 그치더니 눈이 집을 에워싸듯’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상큼한 추위인데도]로 번역된다. 모진 추위와 심한 눈보라엔 세상이 달리 보인다. 검은 것도 희게 보이고, 작은 것도 크게 보이는 수가 있다. 사람도 짐승도 만물이 크고 순박하게 보인다. 작은 산도 오뚝하게 눈이 쌓이면서 커 보이는가 싶더니만, 시인의 시상은 눈이 산봉우리를 만들었다는 시적인 상상력의 두툼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인은 눈 오는 어느 날 긴장된 마음으로 달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흰 달과 흰 눈에 서러 대비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매화는 학인 양 야위었고, 오동에 의지하며 우두커니 보면서 사람 또한 봉황임을 알게 되었다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사람이 봉황이다는 직접 비유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지만, 시인의 눈에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봉황의 예언적 희귀적인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 같이 소박하게 내리는 눈이었겠지만, 화자는 신비함에 취했던지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눈과 대화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추위에 벌벌 떨기도 했던 것 같다. 밤새도록 모진 추위 그치지 않더니만 [눈이 집을 에워싸듯 산봉우리 이루고 있네]라는 시상을 일으켰다. 산 봉오리 오랜만에 흰 옷 한 벌 얻어 입었네, 또는 흰 옷으로 단장한 저 산봉우리도 가능하겠다.


<한자어 어구> 
待月: 달을 기다리다. 梅: 매화. 何鶴: 학이다. 依梧: 오동이 의지하다. 人赤鳳: 사람 또한 봉황이다. // 通宵: 밤새도록. 밤이 통하다. 寒不盡: 추위가 그치지 않는다. 遶屋: 집을 에워싸다(요옥: 두르다. 에워싸다). 雪: 눈. 爲峰: 산 봉오리를 만들다. 산 봉오리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