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쑤~” 풍물로 하나 되는 세상 꿈꾸다

홍성풍물놀이연합회 민성기 회장

2014-08-14     서용덕 기자


“풍물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중요시 하는 대동(大同)의 소리입니다. 소리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보듬어 줍니다. 그렇기에 힘들 때일수록 소리가 함께해야 합니다.” 홍성풍물놀이연합회 민성기 회장은 구항면 출신으로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공무원시험을 쳐 1989년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민 회장은 지금은 공직을 떠나 당진에서 폐기물 처리업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뤄 군청이나 읍면에서 컴퓨터 관련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그를 찾을 정도로 컴퓨터 도사로 통했다. 컴퓨터 도사와 풍물놀이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어릴적부터 풍물에 유별난 관심을 보였다. “어른들이 풍물 노는 것을 보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수작업으로 악기를 만들던 때라 굉장히 비쌌어요. 그래서 악기를 만지는 것조차 할 수 없어 늘 언젠가 풍물을 해보겠다고 벼르고만 있었죠.”

드디어 그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 친구와 공사장에서 막일하며 번 돈으로 꽹과리와 장고, 북을 사서 둘이서 연습을 시작했다. 풍물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무작정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 음반을 듣고 따라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마을 어르신들이 하는 풍물소리를 듣고 차이를 깨달았다. “우리들이 음반을 통해 들었던 소리와 지역 어르신들이 하는 소리가 달랐어요. 그래서 사물놀이가 아니라 우리 지역의 고유한 소리를 해보자는 사람들이 보인 것이 풍물놀이패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1989년 홍주골풍물패를 결성하고 연습에 들어갔으며, 지난 1995년에는 홍성풍물놀이연구회를 결성했다. 특히 1996년 홍주문화회관서 했던 연구회 첫 공연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당시 공연을 준비하며 몇 개월간 맹연습을 하고 각 읍면을 다니며 홍보했는데 정작 당일 날 비가 쏟아진 거예요. 객석도 보니 30여명 찼나? 아이고 큰일이구나 생각했는데 누가 충청도 사람 아니랄까봐 공연시간이 되니까 그때부터 관객들이 몰리기 시작했죠.” 공연에서 홍주문화회관을 꽉 채울 정도로 높은 관심과 호응을 얻어 냈다는 것은 그에게 큰 자부심이자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물놀이는 1978년 무대공연을 위해 꽹과리, 장고, 북, 징 등 4개의 악기로 축소한 것이다.

사물놀이가 무대공연에 맞게 체계화, 정형화된 것이라면 풍물은 연주의 형식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관객과 연주자의 교감에 따라 그때그때 변한다는 특징이 있다. 민 회장은 “풍물은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각 지역의 고유의 개성을 담은 소리가 사라져 획일화되는 것이 안타까워요. 특히 풍물이 갖고 있는 모두 하나 되는 대동의 정신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민 회장은 매주 목요일 저녁 홍성읍 복개주차장서 세월호 추모 문화제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 중 한명이다. “풍물의 대동정신은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눈으로 보는 분도 있지만 세월호 참사로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과 국민들이 아파하는데 풍물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이들의 아픔을 소리로 달래야죠.” 풍물놀이로 함께 기뻐하고 슬픔을 나누는데 주저함이 없는 민 회장은 풍물을 통해서 대동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