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자존심 '김치'

2014-11-14     최봉순<혜전대 교수 ·칼럼위원>

지난주만 해도 ‘황금빛 들녘이 이런 색이구나’ 하며 눈에 담아두던 풍경이, 이번 주는 어느새 논의 바닥이 훵하니 드러나 있고 곳곳에 하얀 마시멜로우가 놓여 있다. 그 옆에는 튼실한 배추, 무가 무성한 것을 보면 한편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신과병(新果餠)을 맛 볼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이다.

새로운 과실인 풋콩, 단감, 풋대추, 밤 등을 넣고 노란 녹두고물과 함께 먹는 신과병은 1년 중에 요즘에만 먹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밥과 반찬을 곁들여 먹음으로 한 끼의 식사가 완성된다. 특히 반찬 중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것이 바로 김치다.

김치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다보니 이탈리아의 한 일간지에 김치가 불고기, 비빔밥처럼 주 요리로 소개한 일이 있다. 밥이 없이 김치만 먹기는 어려운 일이다. 밥과 반찬이 따로 분리되어 식단을 구성하는 예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그러다보니 이런 해프닝도 일어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김득신(1754-1822)의 <풍속8곡병(風俗8曲屛)>에는 노적가리가 마당 한구석에 쌓여 있고 주변에 떨어져 있는 낱알을 쪼아 먹는 닭과 외양간이 있는 장면이 한가로움과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노적가리 옆에 쌓여 있는 무와 배추를 보면 김장 준비가 한창인 것으로 보인다.

유만공(1793-1869)의 한시에 보면 ‘성 밖 마을에서 가을 채소 수확하니 푸르고 푸른 배추와 흰 무 뿌리라네 집집마다 항아리에 가득 담근 김장은 삼동의 정갈한 반찬 준비한 것이라네’ 이처럼 우리 민족은 김장이라는 연중행사를 통해 겨울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무기질 뿐 아니라 젓갈을 넣음으로 필요한 단백질을 섭취함으로 균형 잡힌 식생활을 유지하였다.

김치를 담근 시기는 <농가월령가> 10월조에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라고 씌여 있어 음력 10월에 한 것으로 보이고 지방에 따라 그 시기가 달랐다. 난방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서둘러 김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치는 온갖 채소에 동물성 양념들이 어우러지고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몸에 이로운 유산균이 만들어지며 “섞음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김치의 종류는 약 200여종에 달한다. 김치의 관한 문헌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염지’라 하여 ‘지(漬)’는 ‘물에 담그다’라는 뜻으로 고려 말에는 ‘저(菹)’ 라고 부르며 채소 절인다는 뜻으로 부르게 되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김치의 어원은 ‘침채-팀채-짐채-김채-김치’와 같이 변화 되어왔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담가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김치류는 순무, 오이, 무, 가지 등을 소금에 절인 형태의 김치였다.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는 소금에 절인 장아찌 형태의 김치가 동치미. 나박김치로 발달하게 되고, 오이, 미나리, 죽순 등 다양한 채소류가 등장하게 된다.

조선시대 중기에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통해 들어 온 고춧가루를 김치에 이용하게 되며 색의 변화와 함께 영양학적으로도 비타민 C와 ‘캡사이신’을 섭취하게 된다. 조선시대 이전의 배추는 작고 속이 알차지 못하였으나 1902년부터 속이 꽉 찬 결구배추를 재배하게 되면서 배추김치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한 집안의 음식 맛은 장맛과 김치 맛을 보면 안다고 한다. 김장철이 되면 지역 공동체에서 대규모 행사를 벌이고 동네에서는 품앗이로 김치를 담그는 일은 김장을 통한 한국사회의 결속과 연대를 강화한다. 현대화, 상업화시대에도 직접 김치를 담그고 친척들이 만든 김치를 제공하여 먹는 일은 가족공동체의 정을 순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김장의 풍속은 달라지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여전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김장문화를 세계적으로 보존, 계승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선정하여 2012년 3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였다. 한국인의 정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김치는 음식 이상의 무엇이라 할 수 있겠다. 텃밭에서 속을 열심히 채우고 있는 배추와 순무를 보며 ‘열심히 커줘서 고맙다’ 말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