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에 대한 명상
탐조(探鳥) 여행에서 배우다
충남 논산 출신의 시인 박용래(1925~1980) 선생의 <紅枾(홍시) 있는 골목>에서는 참새가 귀여운 모습으로 우리 마음에 들어와 놀고 있다.
바람 부는 새떼/아침 열시서 열한시/가랑잎 몰리듯 몰리는 /골목 안 참새/갸웃갸웃 쪽문 기웃대다/쫑쫑이 집 쫑쫑이/흘린 밥알 쪼으다/지레 놀래/가지 타고 꼭지 달린 /紅枾에 재잘거린다. -<紅枾 있는 골목> 임 화(1908~1953) 선생의 <네거리의 순이>에서도 우리는 참새를 볼 수 있다.
겨울날 찬 눈보라가 유리창에 우는 아픈 그 시절/기계 소리에 말려 흩어지는 우리들의 참새 너희들의 콧노래와/언 눈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와 더불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청년과 너의 따뜻한 귓속 다정한 웃음으로/우리들의 청춘은 참말로 꽃다웠고, -<네거리의 순이> 일부 참새는 이름이 참 좋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진짜, 진실을 나타내는 ‘참’자가 들어간다.
우리말에 접두사 ‘참’이 들어가서 나쁜 말은 없다. 참말, 참마음, 참소리, 참살이, 참꽃은 또 누구인가. 사랑하던 님이 떠날 때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던 진달래가 참꽃이다. 참새는 그 이름처럼 아주 좋은 새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참새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상상력은 다중적이다.
참새는 이름만큼 대접을 받지 못한다. 농촌 들판의 허수아비를 우습게 아는 영악한 이미지가 있는가 하면 한 때 유행했던 참새 시리즈의 씁쓸한 여운과 60~70년대 포장마차의 가난한 취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참새구이까지 다양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거저 지나랴.’ ‘참새가 죽어도 짹 한다’ 이런 속담들은 그래서 참말이 아닐 수 없다. 참새는 참새목 참새과. 참새, 집참새, 회색머리참새 등 15종이 있다. 양쪽다리를 모아 총총 뛴다. 멧새, 박새, 어치도 같은 방식으로 작은 몸을 옮긴다. 참새는 양쪽 다리를 모아 총총 뛴다.
앙증맞다. 멧새, 박새, 어치도 같은 방식으로 걷는다. 마을 가까이 살아 친근하지만 추수기 낟알 등을 쪼아 먹어 해조(害鳥) 논쟁에도 휩싸이는 등 참새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드물다. 고사성어에 나타난 참새들도 그리 좋은 뜻이 아니다. 엄목포작(掩目捕雀)은 눈 가리고 참새를 잡는다는 뜻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문전작라(門前雀羅). 문 앞이 새 그물을 칠 정도로 한적하다는 뜻으로 문전성시(門前成市)의 반대말. 작라(雀羅)는 참새를 잡는 그물을 말한다.
권세와 부를 잃으면 문 밖에 새 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만큼 방문객의 발길이 뜸해지는 염량세태(炎凉世態-인심의 표변과 세상의 경박함)를 비유할 수 있다. 정약전(1758~1816)은 젊은 날 잘 나가는 동생 정약용(1762~1836)에게 말했다.
“너는 모 상서, 모 시랑과 좋아지내고 나는 술꾼 몇 사람과 이처럼 미친 척 지내지만, 화가 닥치면 어느 쪽이 배반하지 않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고 세상인심의 변화를 경계했다. 한(漢) 나라 때 하규(下邽)의 정리(廷吏-현재의 검찰총장 직분)를 지낸 적공(翟公)이 처음 정리 벼슬을 할 때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와 문지방이 닳을 정도였으나, 그 자리에서 물러나자 문에 거미줄이 슬어 새를 잡는 그물을 친 듯 했다고 한다.
널리 인용되는 문적작라, 문전나작(門前羅雀)의 고사다. 후일 다시 정리가 되니 또 손님들이 들끓자 ‘翟公書門 一死一生乃知交情 一貧一富乃知交態 一貴一賤交情乃見’ (적공서문 일사일생내지교정 일빈일부내지교태 일귀일천교정내견-죽은 뒤에야 그 참다운 사귐을 알아볼 수 있고, 가난해져 보아야 부자로 살 때의 참된 태도를 알 수 있으며, 한 번 귀하게 되고 한 번 천하게 되는 그 속에서 사귄 정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되네)이라고 쓴 방(榜)을 문에 크게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학들은 문전작라의 장점도 주목하고 새로운 해석들을 시도했다.
翟公未解閑居興(적공미해한거흥)
적공은 한가로운 이 흥취를 모르고,
枉恨門前車馬稀(왕한문전거마희)
문 앞이 조용하다고 한탄했다네.
-정두경(鄭斗卿,1597~1673)
<전원즉사(田園卽事)>
한 때 유행한 참새 시리즈 유머는 세태를 풍자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구로 생각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참새와 포수’, ‘참새 부부’ 시리즈 등은 약자(弱者)의 처지로 볼 수 있는 참새를 내세워 팍팍한 세상살이를 실감나게 은유하고 있다.
우리 현실을 나타내는 뛰어난 카피(copy)의 하나로 볼 수 있으며, 그 의미가 가볍지만은 않다. 승자독식,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의 편이 되어야 하나. 강자인가, 약자인가. 상당수가 항상 사회경제적 약자의 편에 서 있음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이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다. 연작(燕雀)은 제비나 참새와 같은 작은 새. 대수롭지 않는 인물을 말한다.
연작안지 홍곡지지(燕雀安知 鴻鵠之志)-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 같은 큰 새의 뜻을 알겠느냐는 말로 곧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인재의 심중을 알리가 없다는 뜻으로 참새를 폄하한다. 출전은 《사기(史記)》 <진섭세가(陳涉世家)>. 연작은 소인배나 하찮은 사람, 홍곡은 군자나 큰 뜻을 품은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인다.
이 고사성어의 주인공 진승(陳勝)은 진나라 말기에 농민봉기를 주도,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 어느 해인가. 고요한 산사를 찾았을 때 참새들이 경내를 떼 지어 날고 있었다. 불심은 자비로워 결코 참새들을 잡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스님들은 무소유(無所有)라 공양을 위해 낟알을 내주는 데도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속세의 우리는 일석이조(一石二鳥)에 혈안이 되어 산다. 돌 한 개로 두 마리의 새를 잡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이제 일석삼조를 넘어서 일석다조(一石多鳥)라는 말까지 만들어 쓰는 세태다. 작은 노력으로 큰 이익을 얻으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안분지족은 인간에게 언제나 어려운 것이었다. 일석이조 대신 만석일조(萬石一鳥), 돌 만 개를 던져야 겨우 새 한 마리 잡을 수 있다거나, 일조만보(一鳥萬寶), 새 한 마리가 만 가지 보물과 같다는 말이 널리 퍼져야 올바르고 좋은 세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석이조라는 말이 사라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를 돌로 잡는 일석이조 보다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는 표현이 나을 것이다. 새를 결과적으로 학대하게 되는 것이 일석이조 아닌가 한다. 《晋書》 <속석전>에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익을 얻게 된다는 일거양득이 나온다. 일거양전(一擧兩全), 일전쌍조(一箭雙鳥)가 같은 표현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두 개의 돌로 한 마리 새도 잡지 못한다. 이석일조(二石一鳥)도 사실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참새는 중국에서 집중적인 수난을 당했다. 참새, 쥐, 파리, 모기를 사해(四害)로 규정, 추방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운동을 벌어졌다. 중국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당시 참새는 쥐, 메뚜기 등과 함께 인민의 곡식을 뺏어가는 ‘계급의 적’이자 ‘해로운 동물’로 낙인 찍혀 대대적인 박멸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참새는 독물이 든 곡식 먹이와 각종 무기를 동원한 전국적인 소탕작전으로 대거 숙청을 당했다. 이 때 수백만 마리의 각종 야생동물들이 살해당하고 호랑이, 늑대, 표범, 들개 등도 대거 사라진 것으로 평가된다. 문혁(文革) 이후 참새는 각종 해충들을 잡아먹음으로써, 인민의 식량을 축내는 반혁명적인 행동을 보상한다는 이유로 복권돼 살해 대상 동물에서 가까스로 빠졌다.
참새가 들판에서 사라지자 각종 해충이 논밭에서 창궐, 오히려 흉작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는 반성이 생겨났다. 참새가 농민들에게 다소간 피해를 주긴 하지만, 참새의 먹이를 분석한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해로운 새가 아니라고 한다. 생태학의 큰 눈으로 보면, 참새는 농업에도 유익한 존재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약 10여 년에 이르는 문혁은 농정 실패 등에 따른 대기근의 환경에서 시작돼 식량 부족과 폭력 등으로 3,000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중국 현대사의 정치적·사회적 혼란과 비극을 보여 준다. 1966년 5월 중국 공산당의 총서기인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의 제창으로 시작된 문혁은 중국 전역의 젊은 홍위병을 통해 구체화되고 가속화됐다.
마오는 잘못된 수정주의의 재연 방지 및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했으나, 사실상 권력투쟁의 성격과 양상을 보였다.
문혁의 공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국가적 재난(天下大亂)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1981년 문혁을 마오쩌둥의 과오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나는 사람, 너는 새, 새가 죽었는데 사람이 곡하다니 의리상 안 될 말이나, 네가 나 때문에 죽었기에 그래서 곡하노라.
-면앙정 송순(宋純, 1493~1582), <곡조문(哭鳥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