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수난 시대
탐조(探鳥) 여행에서 배우다
비둘기 수난시대다. 평화와 우정의 상징으로 인기를 모았던 비둘기의 배설물과 깃털 등이 문화재와 건물을 훼손하고 질병까지 옮긴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신세다. 도심의 비둘기는 모이를 많이 먹어 비만해져서 ‘닭둘기’라는 비아냥까지 듣는다.
비둘기는 최근 도심에서 지나친 개체 수 증가, 배설물 등으로 비둘기 공해가 거론될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환경부가 비둘기(멀리 날아갔다가도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오는 비둘기는 귀소성이 뛰어난 새. 집비둘기, 양비둘기, 멧비둘기 등이 있다)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한 것은 2009년, 정부는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에 따라 까치는 2001년, 비둘기는 2009년 인명이나 항공기, 농작물 등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로 각각 지정했다.
비둘기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시조(市鳥)로 선정되거나 휘장 등에 널리 쓰이다가 대대적인 퇴출 태풍을 맞았다. 지난 2010년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비둘기(산비둘기 포함)를 지역 상징물로 지정한 지자체가 모두 58곳에 이르렀으나 지자체들이 상징물 변경을 속속 추진했다.
2011년과 2010년에는 울산 남구와 충남 아산시가 지역 상징물을 비둘기에서 백로와 수리부엉이로 바꿨다. 서울 도봉구도 2011년 5월 구 상징물을 비둘기에서 학으로 변경했다. 수원시는 지난 2000년 비둘기에서 백로로 바꿨다. 이처럼 환경부가 비둘기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한 이후 시 상징물인 비둘기를 바꾸자는 의견이 시의회 등에서 강력히 대두되어 비둘기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안산시는 2011년 주민 공청회 끝에 비둘기 대신 노랑부리백로(천연기념물 361호)를 새로운 시조로 바꾸었다. 1986년 지정된 비둘기가 26년 만에 퇴출된 것이다. 변경 이유는 고유의 상징성이 없는데다, 시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평화와 우정의 상징’으로 올림픽 개막식 등에서 인기를 끌던 비둘기로선 난감하기 짝이 없는 푸대접이다. 기쁜 소식을 전해 준다는 까치도 퇴출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시흥시의 경우 지난 1978년 지정된 까치 대신에 다양한 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포동 갯벌’을 새 상징물로 2003년 지정했다.
한편 홍성군(군수 김석환)은 군새(County Bird)로 여전히 까치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 아침 상서로운 까치가 창문 머리에서 지저귀었으니 반드시 기쁜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새가 나를 속인 것이 여러 번이었다”고 말하며 한 바탕 웃었습니다.
-조희룡(1789~1866), <임자도에서>
한국전력은 전봇대에 집을 지어 정전사고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까치와의 전쟁까지 벌이고 있다. ‘길조(吉鳥)’라는 까치와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한전은 한 해 보통 2만개 가량의 까치둥지를 없애기 위해 한 때 약 30만 명의 ‘철거인력’을 동원하고 약 400억 원 정도의 비용을 쓰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금택목이서(良禽擇木而棲)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깃들이고 현신택주이사(賢臣擇主而事) 지혜로운 신하는 주인을 가려 섬긴다. 조류 전문가들에 따르면 까치가 전봇대에 둥지를 짓거나 앉아있는 것은 주로 서식지 상실 때문이다. 인간이 새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환경을 파괴해놓고 새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숲, 습지, 농경지, 하천 수로, 덤불 등 서식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새들이 전봇대나 전선에 앉는 것을 거의 100% 볼 수가 없다.(그러나 해변 가까이 사는 갈매기들은 전봇대 꼭대기에 잠시 앉아 있는 것이 때로 관찰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새들이 편안한 자리를 두고 왜 불편한 전선 위나 전봇대 같은 곳에서 휴식하거나 둥지를 만들겠는가. 인간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은 참으로 모순적인 동물로 자기 잘못은 전혀 모르고 있으며, 매몰차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철거대상이 되는 새의 둥지에는 아무런 죄도 없는(전봇대나 전선에 앉은 적이 없는) 새끼들도 사는 곳이다. 신종 연좌제 같은 것이다.
.....천하엔 두 개의 기준이 있으니, 하나는 옳고 그름(是非)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利害)의 기준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이고,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해를 입는 등급이고, 그다음은 옳지 않는 것을 추종해서 이익을 얻는 경우이고, 가장 낮은 등급은 옳지 않는 것을 추종해서 해를 입는 경우이다.....
-정약용(1762~1836), <학연에게 답한다>
주민들의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피해. 민원 발생 등의 이유로 유해야생동물을 지정해야 하는 정부의 난감한 입장은 이해하지만, 친근했던 야생동물들이 차츰 유해동물로 변하는 등의 근본 원인은 우리 인간이 행한 서식지 파괴나 환경오염 등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생태학의 전체적인 그림(Grand Design)에서 본다면, 인간을 오히려 ‘유해사육동물’로 먼저 지정하는 것이 순서이고, 정당하지 않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論語》 <태백>
비둘기들과의 이 같은 성쇠의 인연들을 생각하면, 비둘기파를 새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비둘기파는 비둘기가 가진 평화의 이미지를 정치적 경향으로 비유한 것이다. 영어로도 the doves라 한다. 온건파, 용례에 따라서는 신중파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외교정책에서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을 뜻하기도 하고, 전쟁 상태를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고 한정된 범위 안에서 해결할 것을 주장하는 주화파(主和派)가 비둘기파다. 매파(hawks)는 대외 강경론자 또는 주전파(主戰派). 1798년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처음으로 사용한 말. 1960년대 베트남전쟁이 교착 상태로 빠지면서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전쟁의 확대·강화를 주장한 미국 내 보수강경파를 지칭한다. 김훈(1948~) 작가의 베스트셀러 《남한산성》은 병자호란(1636~1637)을 무대로 주화파(최명길)와 척화파(김상헌)의 나라의 운명을 둘러싼 격돌을 그린 돌올한 작품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고 한다.
영원한 것은 국가이익(國家利益)뿐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비둘기파와 매파, 둘 다 필요하다. 모두가 매파가 될 수는 없다. 강경론과 함께 온건론도 있어야 국익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항구적인 평화를 확보하는데 매파가 유리한 것인지 비둘기파가 나은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개 이상의 길이 있으나 인간은 어느 한 길을 택해 걸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전쟁은 그 본질에 있어서 모두 악(惡)이다. 좋은 전쟁이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