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장수마을

박갑순 이장과 나눠보는 봉암마을 이야기

2008-06-04     이용진 기자

옛날에 부엉이가 살고 있는 바위가 있다 하여 봉암이라고 부르게 된 봉암마을은 수려한 봉수산 아래 60여가구 150여명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봉암마을은 문헌에 따르면 고려 때 홍주에 속했었다가 백제 때는 금주군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임성군에 속했었다 한다.
그리고 조선 초 홍주군에 속했다가 조선 말엽엔 홍주군 평면의 지역이었으나 지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월굴리, 신대리, 마사리, 봉암리, 천동, 일부를 병합하여 월굴과 봉암의 이름을 따서 월암리라 하였고 홍성군 금마면에 편입되었다.
봉암마을은 수년째 각종사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본 기자가 찾아간 날도 마을 공동 작업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박갑순 이장과의 대화
봉암마을은 도내 장수마을 지원 사업 우수마을로 선정되어 도지사 표창을 받고 성공사례 발표까지 했다. 또한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 농협과 추진한 팜스테이 등 마을의 수익은 물론 후세에게 활기가 넘치는 마을을 넘겨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92년에는 농산물집하장을 만들어 마을 수입을 얻었었는데 지금은 사실 큰 쓸모가 없게 돼 농산물집하장을 팔아 회관 옆 총 천사백여평의 마을 토지를 매입했다. 그 자리에 문화체험관, 참새방았간, 찜질방, 꽃동산 등이 만들어졌다. 또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돼 환경부에서 예쁘고 깨끗한 화장실도 만들어 줬다. 참새방앗간에서는 전국에 떡을 판매하고 있다. 떡은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부녀회원들이 주문을 맞추기 위해 새벽에도 나와 작업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지금은 주문이 많이 늘어 연 6천여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 종합개발사업에 신청을 했다. 봉수산 및을 간벌해 야생화를 잘 관리해 판매까지 해 볼 계획이다.
마을 사업을 하면서 아쉬운점이 있다면 사후 관리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전기세, 연료비 등 유지관리비만도 40여만원이 된다. 그리고 이런 사업을 많이 하는데 처음엔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주민들이 시간을 많이 뺏기고 당장은 소득이 없다보니 소극적으로 변해 안타까움이 있다. 물론 십분 이해한다. 가장으로써 생계가 우선인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마을 일을 할때 남자분들은 인건비를 준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동참해주신 지역주민들에게 정말 고맙고 노인회 비용을 아꼈다가 마을 사업에 보태주신 어르신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업무 외에도 너무 열성적으로 도와주신 농업기술센터 강영희 과장님과 유준재 지도사님에게도 고개숙여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마을 사업이 전체적으로 평이 좋다. 하지만 많은 예산과 노력이 투입된 만큼 소득과 연결이 돼야하고 군에서도 산후관리 및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부녀회장 정영숙“우리 부녀자들은 떡 만들어서 돈도 벌고 취미생활로 장구 치구 기체조랑 컴퓨터도 배운다. 오늘 같이 마을 공동 작업을 하면 아프신 노인네들까지 나와서 도와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부녀회장으로 제일 걱정되는 건 참새방앗간에 냉동실이 부족해서 불편한 점과 구회관 리모델링 하는 것, 그릇 등 식자재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인회장 복진석(79)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해서 든든하다. 관광마을로 만든다는데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 노인들이야 뒤에서 걱정이나 해주고 열심히 도와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