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는 표어를 위하여
얼마 전 홍성시내의 주요 길목마다 ‘어마무시’한 표어가 내걸렸다. ‘졸음운전의 종착지는 저세상’, ‘음주운전은 곧 살인행위’라는 짤막하면서도 강력한 현수막 문구였다. 글귀를 보는 순간, 표어가 주는 경고보다 어감이 주는 불쾌감이 먼저 와 닿았다. 일찍 찾아온 더위로 인한 졸음운전과 음주운전의 경고는 언제나 지나치게 강조해도 좋다. 하지만 평온하고 가지런한 읍내의 일상 속에 느닷없이 찾아온 ‘살인’, ‘저세상’ 등의 단어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사랑스런 도시를 갑자기 비정하게 만들어 버렸다.
초강력 단어로 시내가 뒤덮이는 것을 보며 일순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나도 몇 번인가의 졸음운전을 한 적이 있고, 부득이한 가벼운 음주운전의 기억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표어의 공식대로라면 나는 이미 저세상을 여러 번 다녀온 경험을 갖게 되는 셈이고 음주운전을 한번이라도 한 사람은 모두 살인행위를 저지른 강력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과연 타당한 것일까. 경찰은 하루에도 여러 번씩 게릴라식 ‘살인행위’를 단속한다고 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홍성은 그 얼마나 삭막한 곳이란 말인가. 졸음운전과 음주운전을 제어하는 어떤 사회적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이러한 혐오감을 주는 단어의 도배일 필요는 없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귀는 그 나름으로 어떤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하물며 그것이 대로변에 걸리는 대형 현수막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지역에 걸린 글귀는 꼭 틀린 말이 아니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니고 좋은 말도 아니다.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 ‘졸음운전의 종착지는 저세상’을 ‘졸음운전의 종착지는 휴게소입니다’, ‘음주운전은 곧 살인행위’를 ‘아빠의 음주운전 엄마의 평생눈물’로. 최근의 고속도로에서 만난 표어들은 대부분 강력한 경고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지루한 도로에서의 섬뜩한 문구는 오히려 옆에 탄 사람의 잠을 깨우는 효과밖에 없는 듯하다. 경험에 의하면 특이하고 재밌거나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문구들이 오히려 겁주는 표어보다 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재밌는 표어로 운전자들의 잠을 달아나게 만드는 경우도 최근엔 생겨나고 있다. ‘두 시간 마다 꼭 쉬어가시요잉.’ ‘졸음운전 안된다카이! 쉬어가믄 괘얀타’.
인도 히말라야 산맥사이에 위치한 라다크 지역의 위험천만한 산악도로에는 이런 문구가 운전자들을 위험으로부터 경고하고 있다. ‘침을 뱉으면 당신이 미끄러질 거에요’, ‘지옥같이 운전하면 그곳에 가게 될 겁니다’, ‘결혼했다면 스피드와는 이혼하십시오’, ‘운전만 하세요, 날지 말고’, ‘천천히 운전하면 오래 삽니다’, ‘여기는 고속도로지 활주로가 아닙니다’, ‘당신이 졸음운전을 한다면, 가족은 눈물을 흘릴거에요’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