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나사렛대 교수·칼럼위원)
광복절이 또 어김없이 돌아왔다. 광복절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라와 주권을 다시 찾은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그런데 요즘 광복절은 그 때의 감격을 되새기며 나라의 발전과 백성들의 상생에 대한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라, 대체공휴일이라는 미명하에 그저 무더위에 지친 백성들에게 던져준 달콤한 도토리일 뿐이라는 느낌이 더 큰 것은 과연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과연 휴일 하루 더 늘려서 국가경제가 정말로 좋아질까?
한동안 메르스 공포에서 떨었던 백성들에게 대통령의 광복절 담화문은 정말로 ‘불통’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세월호나 메르스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고라도, 국가경제의 위기를 모두 백성들에게 전가시키며 또 한 번 백성들을 원숭이로 본 것이 아닌가. 불과 1년도 채 안된 시점에 서민들의 주택문제와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서 제정했던 서민들의 주택자금마련에 대한 규제가 슬그머니 1년 전보다 더 심하게 바꿔지고,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며 오히려 실업률은 이전보다 더 증가했다.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노동개혁의 의지를 강력하게 말했다. 즉, 국가의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국 힘없는 백성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또 다시 먹고살기에도 바듯한 백성들의 희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국가경제를 되살리기가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국가경제 위기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기에도 바듯한 백성들의 탓이었다는 얘기지 않은가. 그렇게 한다고 과연 청년취업문제와 아직도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비정규직들을 살려낼 수 있을까. 대기업 세금규제는 천방지축 풀어주고, 천민이나 다름없는 백성들에 대한 유리지갑은 이제는 투명하다 못해 너무도 깨끗해서 깨어진 창틀에 대신 끼워 넣고 써도 될 지경이다. 모 방송사에서 말한 것처럼, 대기업 세금만 제대로 걷었어도 지금처럼 모든 공공자금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것.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며 겨우 인턴 직만 늘려놓고, 현장 실사가 아닌 탁상공론으로 펜대만 끄적거린 통계치만 가지고 앵무새 입 벌리듯 되풀이하면 과연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일까. 언제나 일을 저지르는 대장 따로 있고, 뒤처리 하는 백성 따로 있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결코 소리 높여 부르짖는 개혁이나 혁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일들로 인하여 뼛속깊이 알고 있음이다.
백성들은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들어오고, 스위치를 내리면 불이 꺼지는 단순한 기계가 절대 아니다. 더군다나 백성들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원숭이가 아니다.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해서 고민하며 정책을 구상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옛 성군(聖君)들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폭군과 성군의 차이는 극악하고 못된 행동에서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성군들은 자신에게 쓴 소리를 하는 신하를 곁에 두었다. 신하들은 왕과 일반 백성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창이었다. 신하들은 매일 바깥 백성들의 민심을 왕에게 여과 없이 알렸다. 전권을 쥐고도 왕이 맘대로 정책을 펼 수 없었던 것은 신하들의 가감 없는 진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폭군들의 공통점은 자신에게 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제거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들은 반란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역사에 치욕스럽게 기록된다. 힘이 생기면 그 힘에 기생해 편히 살아보려는 간신들이 주위에 몰려든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귀에 듣기 좋은 말을 멀리하고 진실을 알고자 최선을 다하고, 백성들의 진정한 소망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귀에 듣기 좋게 잘 꾸며진 말은 진실을 오도한다. 지도자는 자신만의 인간적 본능이나 권력을 내려놓고 진실을 들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소통의 부재, 곧 불통이 만연한 사회가 되면 그 사회는 곧 ‘죽은 사회’가 된다. 지도자가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진실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번 대통령의 담화는 백성들에게만 양보와 타협을 요구하고 대화를 종용한 것으로 들리는 것은 과연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더 이상 조삼모사 식의 정책을 남발해서도 안 되고, 그나마 먹고 살기 바쁜 힘없는 백성들만의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천민이나 다름없는 힘없는 백성들의 땀과 희생으로 이뤄놓은 국가경제를 지금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또 다시 백성들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노동개혁을 진정한 노동개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벌써 집권 절반이 지났다. 남은 기간 동안만이라도 지금 그 자리가 백성들과 약속하고 그 백성들의 힘으로 올라간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면, 진정으로 백성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을 가진 지도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