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

시각장애인 보행체험기

2015-11-26     백준현 기자

지난 21일 오후 3시 홍주문화회관 앞, 기자는 손수건을 두껍게 말아 눈에 감았다. 그래도 혹시나 빛이라도 들어올까 싶어 눈도 질끈 감았다. 보행도우미가 이끄는 손길에 의지한 채 권룡타운(오페라하우스 웨딩홀)으로 걸음을 옮겼다.
홍주문화회관 언덕길을 내려오자 자동차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시각장애인 보행체험 중이라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횡단보도 앞에 서있겠지만 시각을 제외한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기자에게는 차가 지나가는 소리 하나에도 공포감이 들었다.
“건너겠다고 손을 들어도 차가 계속 지나가네”라는 보행도우미의 말이 들린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라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홍주문화회관 앞 로타리처럼 신호등이 없거나 켜지지 않는 도로를 건너야 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했다. 기자도 손을 번쩍 들고 나서야 길을 건널 수 있었다. 어렵사리 길을 건너고 인도로 진입했다는 말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얼마안가 무언가에 툭 하고 부딪쳤다. 도우미에게 무엇인지 묻자 자동차란다. 인도 위 불법주차에 대한 보도 <본지 405호 11월 5일자 1면>도 있었지만 여전히 인도 위에 불법주차된 차량이 여럿 있었다. 실제로 보행체험 중 기자는 인도 위 주차된 차량에 네 차례나 부딪쳐야만 했다. 시각장애인에겐 인도조차도 안전한 구역은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도우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상가에서 팔기위해 길위에 내어놓은 물건이 인도를 더욱 좁게 만들어버려 부딪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보도블럭도 깨지거나 움푹 들어간 것들이 많아 넘어질 뻔한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쯤되니 ‘괜히 이걸 한다고 했나’하는 후회가 들면서 찬바람이 부는 계절임에도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차도와 인도와의 경계가 없는 골목길로 들어섰어”라는 도우미의 말에 다시 신경을 집중시켰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기자는 눈에 손수건을 감고 도우미와 함께 걷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는 별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간다”고 도우미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을 위해 도우미가 오는 차량이 보이는 쪽으로 건너서 차가 지나갈 때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걷다가를 반복해야만 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느낌이 들었을 때, 권룡타운(오페라하우스 웨딩홀)에 들어섰다는 말이 들렸다. 눈에 둘러맨 손수건을 풀었다. 흐린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셨다. 나도 모르게 “휴”하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3시 27분이었다. 홍주문화회관에서 권룡타운(오페라하우스 웨딩홀)까지 1.3km 구간을 걷는데 27분 걸린 셈이다.

“시각장애인은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큰 일을 치르는 느낌”이라는 신혜화 씨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시각장애인 보행체험이 시작됐다. 이 말이 보행체험 후에야 마음 깊이 담긴다. 신 씨는 인터뷰에서 “거리를 걸으니 바람도 쐬고 기분이 좋다”면서 빙긋이 웃어보였다. 기자가 체험한 27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짧은 시간 거리를 걷는 것에도 울퉁불퉁한 길에 넘어질 뻔하고, 차나 상점의 물건에 부딪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손수건을 둘러메고 도우미와 걷는 중에도 사람들은 건널목과 골목길에서 차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신 씨와 같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위해 이런 것들부터 고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느껴본 값진 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