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사람들은 직계제자인 나한테 왜 자문을 구하지 못하는가”
한성준춤 전수관과 한성준춤 학교 문제를 다룬(본지 41호 1면 보도)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어렵사리 한성준 선생의 직계제자인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인 강선영 이사장과 취재약속을 하고 지난 16일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태평무 전수관에서 만남을 가졌다.
▲ 한성준 선생의 유일한 생존제자
13세 무렵부터 한성준 선생께 배웠다. 한성준 선생님은 하체보다 상체를 많이 움직여야 한다며 양 무릎 사이에 달걀을 끼고 춤추는 훈련을 시켰다. 아직도 생생한데 ‘뼈 삼천마디를 모두 움직여 추어라. 장삼 자락을 걷어 올릴 때는 태산을 들어 올리듯 기풍이 서려야만 지상과 우주가 소통하는 춤 맛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 태평무
태평무는 풍년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복하는 전래의 춤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고 한성준 선생에 의해 구성된 이후 나에 의해 계승 발전하고 있다.
원래 전래의 왕십리당굿에 특이한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한 태평무는 복잡한 장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춤을 만들고 춤을 추는 것에도 높은 수준의 장단 이해력과 춤동작 연구가 필요한 춤이다. 발 디딤이 다양하고 발을 구르는 동작이 멋들어지는 태평무는 한국의 춤 가운데에서도 `발짓춤`이라 부를 정도로 특색이 있는 춤이다.
▲ 미국공연
우리 태평무 전수관에서는 지난 99년부터 매년 국내 유일의 전국전통무용경연대회가 열린다. 대통령상도 이 대회만의 특전이다. 지난해 8월에는 우리 무용계 최초로 70명의 강선영 무용단을 이끌고 미국 링컨센터에서 공연했다. ‘태평무’도 직접 추었다. 까다로운 평론가의 무용평이 ‘타임’지에 실린 날 모두 울었다.
▲ 인간문화재
나는 태평무의 인간문화재이다. 물론 승무도 할 줄 안다. 그 당시 선생님께 배울 때는 승무가 기본이었다. 승무는 이애주나 정재만이 인간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는데 손녀딸이 배워서 춘 것이라 약간 변질이 됐다. 물론 춤은 개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형 그대로 선생님의 색깔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직접배운 제자하고 몇 번 걸러진 제자하고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 한성준은 홍성사람. 생가
그렇다. 18살 때 한번 가봤는데 지금은 대문생각 밖에는 안 난다. 집터는 굉장히 넓었었다. 지금 둘째 손녀딸(한영순)이 살아있다. 옛날 주소로 하면 다 나오는 것 아닌가? 생가를 조성해서 홍성에서 이러한 대가가 출생했다는 것을 자손들한테 알리는 것이 좋다.
몇 해 전에 홍성군청 과장인가 국장인가 하는 분하고 전화통화만 한번 해봤다. 찾아오겠다했는데 그걸로 끝났다. 그때는 내가 국회에 있었으니까 더 크게 발전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애주 한테 생가터를 찾아서 학교를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래서 그때 왜 더부살이를 하려고 하느냐 생가터를 찾아서 그곳에다 만들면 크고 작고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니 공연할 수 있는 장소만 있으면 된다고 말을 해줬다.
▲ 한성준춤 전수관
내년이 86살 되는데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이미 이곳 안성은 한성준춤의 뿌리라는 것이 인식이 되어있다. 홍성에서 한성준하면서 적당히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홍성군의 특색을 찾아야 한다. 지금하면 색깔이 없게 된다. 죽기 전에 그러한 일을 나에게 맡겨준다면 내가 할 수 있다. 5년 전이라도 나한테 맡겼다면 전국의 명소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 홍성의 한성준춤 비
왜 홍성분들은 나한테 물어보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돌아가실 때 유언까지 들으면서 마지막을 지킨 사람인데 왜 이렇게 하는지 섭섭했는데 선생님 고향에서 하는 일이라 그냥 있었다.
홍성에 세웠다는 한성준춤 비를 보면서 왜 이렇게 빈약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선생님께 죄스러웠다. 그래서 우리 전수관 앞에 선생님 동상을 다시 세웠다. 선생님의 훈련무 동작이다. 당시 훈련무 하시던 사진이 있기 때문에 똑같이 했다.
▲ 홍성에서는
옛날 벼슬이 참봉이었다. ‘참봉 한성준의 춤 터전’ 어떤가? 이렇게 해서 써도 된다. 군립무용단에서는 한성준을 붙이면 안 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그걸 붙이면 안 된다. 재작년인가 춤을 배우러 온다고 했는데 거절했다. 김숙자씨는 안성 도살풀이춤 이다.
따라서 홍성에서는 생가터를 조성하고 그 옆에다 2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무대(극장)를 조성해서 춤을 이어가는 것이 좋다. 원뿌리를 두고 무슨 군립무용단에 한성준의 춤을 계승한다고 하는가? 다 빼야 한다. 나중에 바로잡을 때 힘들어 진다.
지금 한성준 선생의 승무는 문화제로 지정된 사람이 이애주하고 정재만 두 사람이다. 본래는 이애주 였는데 중간에 정재만이 들어간 것이다. 결국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나중에 이애주나 정재만의 싸움이 될 것이다. 누가 살고 죽느냐하는 문제이다.
▲ 방안
홍성에서는 생가터와 무대만을 조성해준다면 나한테 문화제 조교가 있으니까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는 모범단체이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이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