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을 만나러 가요

2015-12-10     이윤자

 

지금 나는 열일곱 연분홍 치마를 휘날리며 연인을 만나러 가고 있다. 옷장을 열고 분위기에 맞는 옷을 고르고 좀 일찍 출발하여 미용실도 다녀온다. 남편은 할머니가 멋을 부려봐야 별수 없다고 놀려댄다. “왜 그러세요? 오늘 연인을 만나러 가요.” 소프라노로 대꾸하며 부지런히 홍성도서관 문예아카데미에 나간다. 매주 토요일 그 시간 환하게 맞아주는 분은 우리들의 지도교수님 최충식 시인이시다. 우리들 수강생들은 그분을 연인이라 부르고 습작품을 보내는 것을 연애편지를 보낸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행복한 모습들이다. 오늘도 교수님께 연애편지도 썼고 어떻게 다독여 주실지 몹시 궁금하다. 그래서 더욱 설레는 마음이다. 우리 문예아카데미 회원 구성을 보면 매우 다양한 분들이 모여 있다.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 선생님, 공무원, 직장인, 자유업, 나이 연대도 골고루이다. 글을 잘 쓰는 분도 계시지만 또 나와 같이 잘 쓸 줄 몰라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여 부담 없이 나오는 분들도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문학소녀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항상 글 쓰는 것을 배우고 싶었다. 이 지역 대학에 문예창작과가 있으면 벌써 공부를 했겠지만 기회가 없었다. 우연히 문예아카데미 회원모집 홍보지를 보고 “이런 곳에서도 문학 강의를 해?”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도서관에 수강신청을 하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한번 두 번 횟수가 반복될수록 점점 흥미가 생기고 진지해진다. 교수님은 인상도 좋으시고 열정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수강생들에게 애정을 갖고 지도하시는 모습은 어느 대학 교수님 못지않다고 자부하고 싶다.

처음 ‘시의 이론과 실제’라는 교재로 시의 이미지, 상징, 비유, 리듬 구성 등 중요한 시작법의 이론을 알기 쉽게 강의하면서도 관련되는 여러 가지 지식을 전해주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실례를 들어 세계 지도를 그리며 유럽 에게해, 지중해, 흑해에까지 이르는 민족의 뿌리를 찾아 동서고금 역사, 종교 교리, 삼라만상을 넘나들며 열강을 하신다. 배우고 나니 글쓰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님은 특히 강조하여 “과감히 버릴 줄 알아라”, “가지치기를 잘할 수 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버리는 것은 둘째이고 군더더기도 못 쓰니 나는 소질이 없어, 그럴 때마다 분수도 모르고 헛발을 디딘 것 같아 실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상하게 지도해 주시는 훌륭한 인품의 교수님, 또 심오한 글을 쓰시는 선배님들, 날로 발전하는 회원들, 이런 곳에서는 나도 발전할 수 있겠지 하고 희망을 품는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그래도 나도 많이 발전했다고 자평하고 싶다. 그동안 쓴 졸작 시, 수필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글들이 곳간의 식량보다 더 내게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100세 시대는 지적자산을 쌓는 성취감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은 몸은 고달프지만 부족한 마음의 양식을 채워주고 자아실현과 성취감으로 부자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농부가 가을을 맞는 심정과도 같을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그동안 강의로 용기를 주셨지만, 교재강의가 끝나갈 때는 글 쓰는 사람의 자세에 대하여 누누이 말씀하셨다. 글 쓰는 사람은 겸손해야 하고 책임과 노력이 뒤따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스승으로부터 배운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큰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홍성도서관 문예아카데미 그곳은 내 새로운 인생의 요람이요, 신세계 교향곡처럼 환하게 비춰주는 희망봉이다. 나는 오늘도 곱게 차려입고 연인을 만나러 간다.

  이윤자
<수필가·충남문인협회 회원·홍성도서관 문예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