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하는 삶, 푸른 시내 외나무 다리”
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2)
이달은 오랫동안 배웠던 소동파(1036-1101, 宋)류의 시를 버렸다. “시의 도(道)는 마땅히 당(唐)으로 으뜸을 삼아야 한다”는 스승 박순(朴淳1523~1587)의 가르침에 따라 예전에 은거 했던 원주 손곡리 집으로 돌아와 주야를 두문불출하며 5년여 동안 각고의 세월을 보낸다. 이달은 세상과 문을 닫고 학당(學唐)과 시작(詩作)에만 혼신을 쏟는다. 마침내 손곡 장(壯)은 그의 시적재능과 세계관을 온축시켜 조선의 시어(詩語)로 찬란히 탄생되는 산실이 된다. 5년 여의 절차탁마(切磋琢磨)는 그를 조선 삼당시인(최경창, 백광훈, 이달) 중 으뜸이 되기에 충분한 세월이었다.
“이달은 학당(學唐)과정에서 넓고도 높은 식견을 보여 주면서 갖가지 꽃에서 화분을 채취하고 그 영양분을 섭취하여서 나중에는 자신의 독특한 시 풍격을 형성 하였다. 그리하여 삼당시인 가운데 문학적 역량이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를 받게 되었으며, 이달은 전시기의 문학작품에 대한 점화, 번안, 환골의 과정을 거쳐 점차적으로 자체의 독특한 시풍을 형성해 갔다”(한계호, 중국연변대. 손곡 이달의 학당에 대한 시고) 이달은 손곡리 전가(田家)에서 드디어 생의(生意)와 생취(生趣)를 얻는다. “시(詩)는 언어(言語)의 사원, 시인은 그 사원(寺院)의 제사장이듯” 이달은 당시(唐詩)의 제사장이 되어 있었다.
어느 이른 봄날, 이달은 강원도 땅을 지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손곡리의 옛집이 그리워 시를 짓는다. “집 가까이 푸른 시내에 외나무로 다리를 놓았지 / 다리 끝 버드나무 어린가지 간들 거렸지 / 양지에는 햇볕 따듯해 눈도 다 녹았겠네 / 아마도 잔디 뜨락엔 약초싹이 자라고 있겠지” (길에서 손곡의 옛집을 생각하며 고죽에게 보이다)
家近靑溪獨木橋 橋邊楊柳弄輕條 陽坡日暖消殘雪 料得莎階長藥苗
가근청계독목교 교변양류농경조 양파일난소잔설 료득사계장약묘
이달은 위의 시를 그가 평생 교유하며 사랑했던 문학동지 고죽(孤竹, 최경창1539~1583)에게 보인다. 그후 고죽은 이달보다 30년 일찍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다. 고향을 떠나 수많은 날들을 객향에서 나그네로 방랑하는 자신의 곤궁한 삶과 뼛속 깊이 스미는 외로움을 잠시 잊고, 시인은 손곡리의 옛집을 생각하며 감회에 젖는다.
“양지에는 햇볕 따뜻해 눈도 다 녹았겠지”
필자 역시 유년 시절의 따뜻한 고향집 마당이 언제나 마음 한쪽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런 유년의 꿈같은 마당이 있으려니, 봄이 오면 눈 녹은 양지에서 동무들과 팽이치고 딱지치던 그런 마당을 추억하는 삶을,
시인은 지금 “푸른시내 외나무 다리를 건너” 맑고 빛나는 시(詩)의 세계로 가는 길 위에 있다.
동양화가, 운사회장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