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청령포(淸泠浦)에 부는 바람Ⅰ

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9)

2016-02-04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서쪽으로는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병풍처럼 막아섰고 동·남·북 삼면은 남한강 상류의 차가운 강줄기가 궁형(弓形)으로 휘감아 흐르는 곳에 단종(端宗, 1452~1455)의 유배지 청령포가 있다.
이달(李達)의 시 ‘영월 가는 길’ 행로(行路)를 따라 오월 중순 이곳을 찾았을 때 청령포 수림지는 세찬 바람으로 춥고 스산했다. 자갈과 가시나무, 모래흙 속에서 애기 붓꽃들이 그제서 고개를 내어민다.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 제사(題詞)에서 허망한 인간의 욕망을 노래한다.
“나는 쿠마에(Cumae)의 무녀(巫女)가 병속에 매달려 있는걸 보았네, 넌 소원이 뭐니? 소년들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한다. 난 죽고 싶어.”
아폴로 신에게 한 움큼의 모래알 수만큼 오래 살기를 청할 때 젊음도 함께 말하지 않아 끝없이 늙어 쪼그라들다 끝내 벌레처럼 변해버린 시빌(Sybil), 그녀는 조롱거리가 된 지루한 삶이 어서 끝나기를 소원한다. 쿠마에의 패러독스다.
인간은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패륜도 서슴지 않는다. 어린 조카 단종을 강제로 폐위시켜 죽게 한 수양대군. 그는 조선의 왕이 되었으나 그의 행위는 ‘춘추’의 주륙(誅戮) 에 해당하는 찬탈의 죄로 기록되고, 억울하게 승하한 어린 단종은 만대에 추모와 애도의 임금으로 기억된다. 역사의 패러독스다.
우리의 시인 이달(李達)은 ‘영월가는 길(寧越道中)’ 3·4구(句)에서 험난한 여정, 고단한 나그네 시름과 시대의 아픔을 담아낸다.
“시름 품고 나그네길 멀리 다니다 보니 / 천봉우리에 길이 험난하다 / 봄바람에 들려오는 두견울음 괴롭고 / 서녁 해에 노릉은 차갑구나 / 고을은 산성과 이어지고 나루 정자는 물가를 눌러 섰는데 / 타향에도 또한 봄빛이라 어느 곳에서 만단 시름을 다스려 볼거나(허경진 역 참조)

懷緒客行遠 千峰道路難 / 東風蜀魄苦 西日魯陵寒  
郡邑連山郭 津亭壓水闌 / 他鄕亦春色 何處整憂端
회서객행원 천봉도로난 / 동풍촉백고 서일노릉한  
군읍연산곽 진정압수란 / 타향역춘색 하처정우단

필자는 청령포의 겨울 풍경을 그려 1·2구(句)의 시의를 대신한다.
슬픈 역사의 현장, 천봉우리에 험난한 여정, ‘영월 가는 길’은 청령포 수림지 위에 부는 거센 바람으로 시인의 시름을 더욱 깊게 한다.

 

 

 

동양화가, 운사회장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