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흥망 - 강물은 흐르고Ⅰ
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11)
기원전 18년 온조(溫祚)는 지금의 송파, 강동구 일대에 하남 위례성을 쌓고 백제국을 세운다. 4세기 중엽의 백제는 북으로 예성강, 동으로는 춘천, 남으로는 가야와 맞닿는 넓은 영토를 지배하며 활발한 대외무역을 통해 강력한 국제적 상업국가로 성장, 백제의 전성기를 구가 한다.
그러나 강성해진 고구려(장수왕)의 공격으로 475년 끝내 한성은 함락되고 한성백제 500여년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22대 문주왕은 남쪽 금강 유역의 웅진(공주)으로 천도 한다. 60여년의 웅진 백제시개를 거쳐 6세기 전반 성왕(聖王16년.538)은 부여 사비성으로 다시 천도하여 백제 부흥의 전기를 찾는다.
그로부터 서기 660년 멸망 할때까지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비로소 찬란한 백제 문화를 꽃피운다.
무령왕릉을 비롯한 송산리, 부여 능산리 고분군의 선진화된 고분문화와 국보급 문화유산들이 이때 탄생한다. ‘백제의 미소’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금동삼산보살상, 미륵반가사유상(일본국보1호, 목제, 법륭사소장).서산 마애삼존불상과 최근에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등. 드높은 백제문화의 백미가 된다.
우리의 시인 이달(李達)은 공주를 지나면서 마치 어제일 처럼 눈에 선한 백제흥망의 역사를 바라본다. 무너진 전가, 불타는 성벽, 충신은 죽고 임금은 조롱당하며 백성은 무참하게 되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지금 왜국의 난리로 가까운 이들의 생사조차 알수 없는 참담한 조선의 한 가운데에서 잔인한 역사의 데자뷰에 두려워한다. 아! 지인과의 술한잔에 눈물을 쏟는 시인, 힘없고 슬픈 나라의 역사여...
“공주에서 송정옥을 만나다”를 읊는다.
“왜놈들의 난리가 몇 해가 되었건만 싸움이 아직도 한양에 가득하다니, 가까운 사람들을 모두 잃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물을 수가 없구려. 해질녘 임 계신 곳 바라보다가, 봄바람에 고향으로 마음 보낸다오. 난리 통에 그대 술을 받아 마시니.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는 것만 같구려” (허경진, 국역손곡집)
寇盜經年歲 구도경년세 兵戈滿漢陽 병고만한양
所親皆喪亂 소친개상란 不敢問存亡 불감문존망
西日瞻行殿 서일감행전 東風入故鄕 동풍입고향
時爲對君酌 시위대군작 涕淚欲点常 체루욕첨상
움베르트 에코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모두 역사의 자식들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통음(痛飮)은 더욱 우리를 아프게 한다. 역사의 흥망은 필연인가 우연인가. 지금은 치세인가 난세인가. 흐르는 강물에 질문한다.
동양화가, 운사회장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