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꿈꾸며

2016-05-19     김용일

하늘은 우리가 외면하고 용기 없었음을 꾸짖는 것일까?
발굴 기간 내내 바람이 매섭고 비는 퍼붓고, 함박눈마저 쏟아졌다. 가림막은 찢어졌고 갱도입구가 무너지는 아찔한 사태도 발생했다.
축축하고 음습한 땅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금방이라도 돌덩이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데도 폐광 안쪽에서는 유해의 손가락 뼈마디 하나라도 어둠 속에 묻어둘 수 없다며 땀 흘리던 박선주 단장과 안경호 국장을 비롯한 발굴단원들은 몇 시간째 일손을 멈추질 않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유해에 묻은 흙을 털어내던 초등학교 3학년 어린 학생의 붓질, 동네일도 아니건만 멀리 강원도 동해에서 달려와 수렁골을 파고 천막을 치고 힘든 토목 작업을 전담해 준 한중경님, 화학약품 냄새에도 불구하고 유해 보존을 위해 약품 처리를 해준 대학생들, 고생들 한다며 따뜻한 참을 제공해 주신 백제물산 사장님,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사건은 일본도 역사적 책임이 있다며 멀리 일본에서 날아와 봉사해주신 샤또 교수님, 억울한 영혼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보겠다고 개토제 공연을 맡아 준 홍성문화연대 회원들, 텐트와 탁자 등 물품을 제공해주신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 봉안당 제작을 책임져 준 서성원 사장님, 발굴당시 구제역이 돌아 방역상 출입이 통제됨에도 흔쾌히 출입을 승낙해 주신 이보영 농장주님, 유해의 발굴과 안치를 위해 힘써 주신 국민보도연맹 홍성유족회 황선항 회장님과 최홍이·이종민 선생님, 그리고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홍성군수님과 군의회 의원님들……. 이렇게 나이와 직업, 사는 곳이 다 달라도 어느새 발굴단과 자원봉사, 시민과 관은 하나가 되었고, 하나가 된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저질러진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폐광굴에 암매장되었던 민간인 집단 학살의 참상과 진실의 일부를 세상에 드러나게 할 수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청산해야 하는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음일까? 끝장내야 하는 민족적 굴욕과 외세의 지배를 끝내지 못한 업보였을까?
아무리 6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지만, 굳이 대퇴골의 골수까지 파먹고 자란 아카시아 뿌리가 야속하기만 했다. 아직 사랑니가 나지 않은 채 발견된 치악골은 어린 육신마저 철탄에 의해 쓰러진 슬픔이었고, 두개골을 관통한 총알 자국은 확인사살까지 마친 것으로 보여 분노마저 치밀었다. 뼛속에 박힌 채 발견된 MI탄두는 6‧25 한국전쟁이 거대한 악마들에 의한 동족간의 비극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무릇 국가는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국가를 구성한 국민에 대한 의무이다. 그러나 한국전쟁기에 정치적·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테러였다. 정권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선량한 양민을 상대로 협박, 공갈하고 학살하는 것은 명백한 반국민적인 테러 행위다.
발굴된 유골 21구와 유품 모두는 홍북면 상하리 88-45 국민보도연맹 용봉산 추모공원에 5월 21일 안치한다. 안치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사건의 원인과 진상은 규명되어야 하고 가해자의 반성과 사죄가 반드시 이루어져 한다. 또한 관련 입법이 이루어져 돌아가신 분들과 유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 앞으로 뼈 한 조각이라도 유가족들의 품에 돌려보내기 위한 DNA조사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뉴스를 보고 찾아와 무릎 꿇고 “아버지”를 외쳐 부르던 유족들에 대한 도리이자 산 자들의 의무이다.
투쟁의 동력은 아픈 과거와 밝은 미래에 있다. 평화와 인권을 향한 노동과 투쟁을 멈추지 말자. 이제는 국가가 나서 진실을 발굴하고 구천을 떠도는 수 십 만의 영혼을 위로하고 유가족들의 피맺힌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할 때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우리에게는 ‘평화와 인권을 지향하는 용서와 사랑이라는 무기’가 있지 않은가?
다시 한번 홍성지역 유해발굴에 참여해 준 모든 분들에게 하늘에서 땅 끝까지 삼가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홍성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