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딱없이 9남매 다 키웠지!”
장터에서 만난 사람- 갈산장 이준선 할머니
이준선 할머니<82·사진>는 몇 년 만에 갈산 오일장에 나와 고사리, 상추, 오가피, 열무를 바닥에 펼쳐 놓았다. 지난 4월 갈산 오일장에서 직접 뜯은 오가피를 먹고 관절 아픈 것이 나았다며 손가락을 쫙 펼쳐보였던 할머니는 두릅과 오가피를 사니 방풍나물을 한 줌 얹어 주었다. “우리집에 단감 진진허니 가을에 꼭 먹으러와. 엄마 모시고 참말로 같이 와. 진죽마을 연표엄마라고 하면 다 알어.”
이 할머니는 딸3, 아들3, 딸1, 아들1, 딸1 순으로 모두 9남매를 키웠다. 진죽마을 꼭대기에 사는 이 할머니 부부는 원산도가 고향으로 육지에 나와 산지 55년이 됐다. 배멀미가 심해서 배를 탈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딸 셋을 낳고 진죽마을에 먼저 나와서 떼집을 짓고 터를 마련했다.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이 할머니는 갈산장에서 복숭아장수 옆에 서서 사람들이 먹고 남긴 복숭아씨를 주워왔고 할아버지가 그것을 접목시켜 과수원을 일궜다.
갈산에서 ‘수리골 복숭아’하면 맛있기로 소문난 복숭아였는데 잘 팔릴 때는 하루 10짝이 넘게 팔렸다. 이 할머니 집에서 갈산면을 나가려면 수리고개를 넘어 가야 하는데 걸어서 30~40분이 걸린다. 할아버지가 지게로 복숭아를 지고 수리고개를 넘어 하루에도 8번씩 복숭아를 시장에 날랐다. “나잇살 꽤나 먹은 갈산 사람들은 시방 우리 복숭아라고 하면 다 알어. 왜 지금도 안 갖고 오냐 하는걸. 씨가 쏙 빠지고 아주 맛있었어. 백도, 황도는 복숭아가 쑥쑥 갈라지고 아주 맛있었어. 두 개 먹으면 배불렀는걸.”
아이를 등에 업은 할머니는 우는 아이들을 달래며 복숭아를 팔아 9남매를 가르쳐 힘들었지만 무척 자랑스럽다고 한다. “둘째 아들 업고 장에 다니는데 비가 와서 물이 뚝뚝 떨어져 아들이 집에 가자고 보채는데 갈 수가 있어야지. 그땐 애들이 있을 때라 어려운 줄도 모르고 일 했지. 참말로 말 할 것 도 없이 고생 많이 했네 그려.”
이 할머니는 큰 수술을 두 번 했다. 한 번은 직장을 30cm를 잘라냈고 또 한 번은 자궁암 수술을 했다. 할머니의 양쪽 다리를 비교해 보면 심하게 차이가 난다.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에 비해 두 배가 굵은 이유는 자궁암 수술 후유증으로 임파선이 끊어져서다. 다리가 저려 오래 앉아 있거나 서 있기 힘든 할머니가 몇 년 만에 다시 장에 나온 이유는 집안에 있으면 심심해서이기도 하지만 건강이 안 좋아 잠시 집에 내려온 둘째딸이 나물을 뜯기 좋아해서이기도 하다.
지난 23일 갈산장을 찾았을 때 이 할머니는 반갑다며 열무, 표고버섯, 상추, 대파, 오가피를 두 봉지 가득 넣어 누가 보기 전에 얼른 가져가라고 귀엣말을 했다. 이 할머니는 중국에 가 있는 막내딸이 생각난다며 이것 저것 챙겨주려 했다. 상추에는 새끼 달팽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