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리마을

이장님과의대화 - 이서준 이장과 나눠보는 신리마을 이야기

2008-07-30     이용진 기자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년전 당진에서 이곳에 피난 온 한산이씨 한 사람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생기기 시작해 새터 또는 신대라고도 불리는 서부면 신리마을은 폐교된 천수초교 앞의 삼거리에서 남당리 방향 길가에 넓게 형성된 마을로 양옆으론 양곡마을과 안흥마을이 있으며 투구봉 줄기의 삼배제가 마을 뒤를 감싸고 있고 앞으론 천마산이 바라보이는 마을이다. 신리마을은 65가구 1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로 백제 때는 결기군, 신라와 고려 때는 결성군, 조선 초엽엔 결성현에 속했으며 조선 말엽(고종 32년, 1895)엔 결성군 하서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리, 내대리, 안흥리를 병합하여 신리라고 하였고 홍성군 서부면에 편입되었다.

■추석날이면 안녕기원고사를 지내고 콩쿨대회로 하나가 된다.
신리마을에는 신성시 여겨 소중하게 보존하는 왕소나무가 있다. 600여년된 이 노송은 어른 둘이 양팔을 벌려도 모자랄 만큼 크고, 많은 전설과 추억을 담고 있는 마을의 수호목이다.
이곳에서 매년 추석이면 향우회가 주축으로 출향인과 주민들이 모두 모여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오고 있다. 이날은 마을이 최고로 북적거리고 풍족한 날이기도 하다. 명절이라 고향을 찾은 출향인과 원주민들, 타 마을주민들까지 모두 함께 어우러져 한바탕 잔치가 열린다. 그 분위기는 그대로 밤까지 이어져 콩쿨대회로 절정을 이룬다.
신리마을은 작년에 5회째 콩쿨대회를 열어 신리마을이라는 연결고리로 모두 하나가 된다. 이서준 이장은 “단결과 화합의 초석이 되고 있는 콩쿨대회는 잊혀져가는 옛 모습을 되살리고 추억과 향수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어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홍보의 차원에서라도 홍성군에서 올해와 마찬가지로 지원을 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신리마을을 빛낸 이서준 이장
신리마을의 중심인 마을회관을 가면 넓은 부지가 인상적이다. 1000여평에 달한다는 마을부지엔 2층 높이의 회관과 농기계창고, 저온창고가 지어져 있어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관 맞은편엔 농수를 공급해주는 신리저수지가 있고 조선 후기 유학자인 남당 한원진 선생의 묘가 신리마을에 있으며 몇 년 후면 노인·장애인 복지타운이 들어설 지금은 폐교가 된 천수초교가 있다.
13년째 이장을 맡아 마을의 소소한 일까지 해오고 있는 이서준 이장은 수 많은 공로를 세운  지역의 숨은 인재로 서부면 상록회장은 물론 수많은 일을 앞장서 해오고 있는 서부면의 선봉장이다.
항상 마을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헌신적으로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서준 이장은 마을 전주민들은 물론 항상 불만 없이 마을 일에 솔선수범한 양영손 새마을지도자, 이종원 개발위원장, 김명옥 부녀회장, 김종순 총무, 4명의 반장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한다. 그리고 묵묵히 뒷받침해주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쑥스럽게 했다.
이서준 이장은 마지막으로 “마을의 48ha정도의 논에 농로가 없어 경작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예전처럼 농지정리지원사업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과 예전에 고소 사건 등으로 마을 주민들간에 갈등이 있었는데 슬기롭게 잘 이겨냈고 지금은 더 이해해주며 잘지내고 있다. 앞으로도 서로 양보하고 아껴주는 신리마을주민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며 만남을 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