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주씨 집성촌 창정마을

조영희 이장과 나눠보는 창정마을 이야기

2008-08-20     이용진 기자

홍동면 사거리에서 장곡방향으로 가다보면 면사무소를 지나 왼편에는 홍동초등학교 옆 작은 도로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면 잘 지어진 창주사가 나오고 내리막길을 끝까지 가면 창정마을회관이 자리 잡고 있다. 회관을 중심으로 50여 가구가 모여살고 있는 마을이 홍동면 운월리 창정마을이다.
운월리의 운곡마을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 내가 흐르며 마을의 지형이 햇빛이 잘 받도록 되어 있어 창정이라고 부른다.
창정마을은 마을 입구에 홍동장로교회와 마을 안에 천주교홍동공소가 있어 종교가 삶의 원천이 되며 주자 사상이 유학사상의 본산이 되고 홍동초등학교와 갓골엔 풀무전공부가 있어 교육의 터전으로 종교와 사상, 교육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고려 때는 홍주, 백제 땐 금주군, 신라 때는 해풍현에 속했었고 조선 초엽 홍주군에 속했다가 말엽엔 홍주군 번천면의 지역이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창정리, 상반리, 종현리, 운곡리와 홍안송면의 송정리, 평촌의 각 일부를 병합해 운곡의 이름을 따서 운월리라 하였고 홍성군 홍동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운월리는 송풍, 창정, 상반월, 운곡 4개의 행정구역 마을로 분리되어 있다.

▲창정마을은 신안 주씨 집성촌으로 시조를 모시는 창주사가 있다.
중국 송대의 유학자인 주자의 증손 청계공 잠이 조정 권신들의 몽고침입에 대한 주화주장을 개탄하다가 1224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그 중 한 부류가 운월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주자는 중국 송대의 유학자로서 14세 때 급제해 여러관직을 거쳤고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그의 학문이 인정되어 문공의 시호가 내려지고 다시 태사, 휘국공이 추가 되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동양은 물론 서양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문을 펼친 인물이다.
창정마을에는 인구의 90%가 신안 주씨이다. 서로가 같은 집안이고 친척인 셈이다. 그래서 더 가깝고 인정이 많다.
마을에는 신안 주씨의 시조를 모신 창주사가 있어 일 년에 한 번씩 제를 올리고 있다.

▲‘이장이 마을과 주민들에게 의지하며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조영희 이장
창정마을은 작년부터 여자이장인 조영희씨가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다. 여자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조영희 이장은 현재 홍동면부녀회장과 홍동면여성의용소방대장이다.
조영희 이장은 대구가 고향이고 80년도에 결혼한 후 88년도에 남편의 고향인 청정마을에 내려왔다. 집안일은 물론 많은 농사일도 혼자 거뜬히 해내고 있는 조영희 이장은 “아이들도 다 컸으니 건강하고 봉사 열심히 하는 것이 목표이고 해야 할 일이다. 33개 마을을 다니다 보면 정말 딱한 사람이 많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으로 봉사를 한다. 그리고 마을 일도 봉사로 하고 있다. 모든 일이 짜증을 내면 일하기 싫은 것이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솔선수범해야 한다. 주민들이 이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장이 주민들을 의지하며 살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너무 잘해주고 많이 도와주셔서 봉사도 마을일도 할 수 있다. 주병찬, 주정하, 주기탁, 주호창, 주정태 씨 등 마을 어르신들에게 이번 기회에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점점 고령화가 되어 60~7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인데 모두 건강하시고 항상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