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1>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2016-12-29     한지윤

죽는 것이 무서워 식욕이 떨어져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약을 먹으면 토할지도 모르므로 순전히 배를 공복으로 두기 위해 서였다.
연숙은 그 이상 멀리까지 갈 생각을 포기하고 도로 곁에 있는 나지막한 소나무 숲 속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부터라면 아무도 숲속을 들여다 볼 인간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는 허둥지둥 길 쪽으로 달려 나왔다. 한쌍의 남녀가 소나무 곁에서 꼬옥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최후까지 이 세상은 조금도 빈틈이 없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다시 백 미터쯤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가 그녀는 주위를 흠칫거리면서 숲 속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은 없었다. 바다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뿐이다.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동안 자신의 마음의 결심이 진실 되게 후회하지 않는지, 어떤지를 확인해 보았다.
후회하기는커녕 마음은 스스로 죽는 결행에 아주 대환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초콜렛이나 카라멜을 꺼내듯이 수면제 약병과 포도주를 꺼냈다. 그녀는 약 맛이 썼으므로 얼굴을 찡그려 가며 포도주로 꿀꺽꿀꺽 백 알의 수면제를 모두 삼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상당한 의지력을 요하는 것이었다. 술과 함께 먹으면 체내의 흡수가 빨라 약효과가 빨리 나타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격려가 되었다.
삼키기를 다 끝냈을 때. 그녀는 포도주병의 병마개를 막으면서 무의식적으로 혼자서 중얼거렸다.
“어머! 유선생님. 인간에게 고해라는 말이 있죠……”
그녀는 조금도 몸의 변화를 느끼지 않았다. 파도 소리도 상쾌했고, 초생달이 소나무가지 너머로 어슴프레하게 보인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연숙은 자그맣게 하품을 했다. 그것이 연숙의 의식에 남은 최후였다.

맑게 개인 늦여름의 아침, 햇볕은 여름으로 다시 후퇴하는 듯한 따가운 날씨였다.
10시부터 시작되는 수학 강의시간에, 소영이가 교실 안에서 창으로 한 눈을 팔고 있는데 우연히 경찰관 두 명이 캠퍼스를 가로질러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그들은 곧장 그대로 뒷문으로 빠져 나가는 길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되자 어제부터 연숙이로 인해 조마조마하게 몸이 달아지낸 일이 괜히 분한 생각마저 들었다. 설마 염치없이 살아서 돌아오지는 않겠지. 그러나 맥없이 돌아오게 되면 호통을 쳐 주고 싶은 터였는데, 오후 4시에 소영이가 자기 집에서 한 통의 전보를 받아들었을 때, 그녀는 두 다리에 기운이 탁 풀리며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어서 대신 기둥을 붙들고서야 겨우 몸을 지탱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억지로 전보의 겉봉을 뜯지 않은 채로 자기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소영은 이 극적인 한 순간에 자신의 인간성이-
-잔혹하고, 방자하고, 이기적이고, 적극적이고, 약간 호인 인상이고, 고독형인데다가 성질이 급한 괴물과 같은 자신의 마음이 - 어떻게 나타나는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그녀는 전보를 뜯었다,- 토하고 거의 혼수 상태인 채로 자력으로 친지의 집까지 돌아왔다, 살아있다. 연숙이 -
소영은 거울을 보는 것도 잊었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으로 달려가 의자에 앉자마자 서둘러 종이를 꺼내 쓰기 시작했다.
“너의 머리는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너의 심장과 위장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 어기찬 심장과 위장에 대해서 너의 그 머리는 겸손 해져야 한다……”
소영은 그것을 편지 봉투에 넣고 나자, 새삼스럽게 어디로 이걸 부쳐야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배가고파 옴을 느꼈다. 그녀는 급히 부엌으로 뛰어가 냉장고 속에 코를 쳐 박고 소세지며 토마토며 야채며 있는 대로 냄새를 맡아가면서 쩝쩝거리기 시작했다.
소영은 7월의 한더위에 여름의 해수욕장이 남녀들로 만원을 이루고, 경치도 대단치 않은 해안선에 참깨를 뿌려 놓은 듯이 인산인해를 이룬 피서객의 사진을 신문에서 보게 되면, 그러한 시기에 굳이 바캉스랍시고 바다로 나가는 인간의 한심함을 새삼스럽게 경멸하고 싶은 기분이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방학이 되어 바닷가로 놀러가고 싶다고 졸라대면 가장인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별도리 없이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니면 휴가를 받아, 감자를 씻은 것 같은 해안으로 나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을 전혀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었다.
한 번은 동생 규형이가,
“누나, 이 많은 남녀 인간들이 모두 한꺼번에 바다 속에서 오줌을 누어대니까 이렇게 굉장한가 봐?
라고 말했을 때 소영은 무의식중에 화를 내며,
“그런 되잖은 소리 하는 거 아냐? 넌 네가 바다 속에서 오줌을 싸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그렇지!”
하고 되받아 윽박을 질렀었다. 소영은 가장 깨끗하고 가장 시원한 여름바다의 시기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9월 초순 무렵, 태풍 시즌이 오기 직전의 시기로서 태풍이 불어온다면 물론 안 되겠지만, 그때 기후의 여름 바다는 자연 그대로의 달콤함을 주게 된다. 그 시기에는 파도도 잔잔하고 백사장 또한 너즈러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특히 밤바다에서 수영하기를 좋아했다.
밤의 바다 속에서 수영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생을 통달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갓 성숙한 아가씨가 처음으로 검은 레이스가 달린 속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밤바다와 검은 레이스의 속옷과는 어딘가 비슷한 느낌을 풍겨준다. 약간은 퇴폐적이고 약간은 신비적인 그런 맛의 느낌을.
소영이가 밤바다의 수영을 좋아하는 것은 9월의 바다에서 7,8월 여름의 인파 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일과 부딪칠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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