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3>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2017-01-12     한지윤

“헤엄쳐 돌아가지 않으면 바다 위를 걸어서 돌아갈 셈이야?”
연숙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으응……그건 아니고, 배를 태워 달래는 거지.”
멀리 어선 같은 자그마한 배와 보트 몇 척이 보였다.
“보트라면 저기도 있는 걸……”
하고 연숙이가 재빨리 손을 들어 부르려 하는 것을 소영은 저지시켰다.
“바보군! 저 보트는 아베크족들이잖아?”
“여자만 타고 있는 보트야 별로 없을 것 아니야.”
“아니, 남자들만이 타고 있는 보트가 어때? 얼굴을 보아 기분 나쁜 듯한, 별 볼일 없는 패들이 타고 있는 보트를 선택하기로 하자, 얘!”
둘은 콘크리트 섬 위로 올라갔다. 맨 처음 보트에는 파자마 같은 옷을 입은 저질의 사나이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콘크리트 섬 주변을 돌며 소영과 연숙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둘은 얼굴을 외면하고 모르는 체 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실례되는 말을 했다가는,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배를 확 뒤집어 엎을거야!”
그들이 쉽게 물러서지 않자 소영이가 화를 내듯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그 다음에 지나친 것은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부부의 보트였다. 그 보트의 모습은 소영이 장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현재의 그녀는 마치 기괴한 동물이라도 타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고 소영은 그 보트를 전송하듯 보냈다. 세 번째의 보트는 여자 뿐 이었다. 도와 줄 것을 요청하지 않는 한 여자뿐인 보트는 결코 그들 쪽에서 먼저 어떤  의사표시를 해 오거나 유혹 따위는 하지 않는다. 소영이가 자신이 여자면서도 여자를 따분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 두고 있는 것이다.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에 세 척의 보트를 지나쳐 보내고 난 뒤 소영과 연숙은 갑자기 알아차린 일이지만 가까이 있던 주변의 보트의 배치도가 처음 보다 아주 많이 변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들이 있는 곳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던 몇 척의 보트는 바다의 물살의 흐름에 따라 해안 가까이 접근하려고 해안선 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힘껏 소리쳐 불러도 좀체로 들릴 것 같지 않은 거리였다.
“얘, 이젠 단념하고 헤엄쳐 가기로 하자.”
연숙이가 풀이 잔뜩 죽은 듯한 눈빛으로 소영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투는 ‘네가 호기심 있는 것만을 너무 고집하기 때문에’
라는 비난의 소리가 밑바닥에 깔린 듯 했다.
“조금만 기다려. 이번에 오면 꼭 탈수 있어.”
연숙은 반신반의하며 소영이를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보트 한척이 가까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소영이 호기심을 맞춰 준 것인지 남자들만 탄 보트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지금 상황으로서는 결코 싫어해야 할 마음은 없었지만, 소영이가 바라던 보트는 아니었다. 타고 있는 남자들은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어린 또래들이었다.
그래도 소영은 손을 흔들었다.
“좀 태워 줘요!”
하고 외치자, 보트는 물살을 가르며 다가왔다.
“왜 그러세요?”
키를 잡고 있던 사나이가 말했다.
“여기까지 헤엄쳐 오느라고 지쳐서 그러는데요, 해변까지 태워다 주실래요?”
이렇게 말하면서 소영은, 그가 꽤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기질이 거친 듯한 청년이라는 데에 관심이 갔다. 그는 소년들을 감독하면서 보트놀이를 시키고 있는 인솔자인 듯이 보였다.
“그래요? 그럼 어서 타시죠.”
그는 소영이와 연숙이가 보트로 옮겨 탈 때, 손을 잡아 주었다.
그의 손은 귀공자 같은 매끈한 피부였다. 어딘가 신경질적인 듯한 손가락이 여름의 태양과 바닷바람 속에서 한 순간 당황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두 아가씨를 태우자, 마치 솜씨라도 보여 주려고 하는 듯 보트의 속도에 급피치를 올렸다. 보트는 뱃머리를 쳐들둣이 하고 양쪽으로 물보라를 하얗게 갈라 세우며 해변으로 미끄러져갔다.
“이 조무래기 해적들은 내 사촌동생들입니다. 돌보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아주 귀찮습니다……”
사나이는 나직한 목소리로 두 아가씨에게 속삭였다.
“저녁 식사 후에 한 번 더 수영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전 이 아이들을 숙소에 두고 다시 나올테니까요.”
소년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얘기했으므로 마치 비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했고 그녀들 자신들은 마치 그 조직원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학교에?”
소영이가 물었다.
“네, 예술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불화 습작을 하고 있죠.”
세 사람은 저녁 7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이름을 묻는 걸 깜빡 잊었구나.”
헤어지고 나서 연숙이와 둘이 걸어가다가 소영이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이름 따윈 알아서 뭐 해? 불편하면 별명을 붙여 부르면 되지, 뭐. 환쟁이라든가, 해적선의 머저리라든가……”
연숙은 태연히 말했다.
“금속성의 느낌을 주는 녀석이야.”
“어떤 의미에서? 칭찬하는 소린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세 사람은 저녁 무렵, 약속 시간에 바닷가에서 만나 근처의 비치하우스에서 오렌지 쥬스를 마셔가면서 어둑어둑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부모들에게 발각되면 단단히 혼이 날 것이겠지만 데이트를 하는 데는 여름밤의 무드가 훨씬 기분 좋은 멋이 있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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