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시집 하나 내주고 싶다”

한용수 시인 1주기, 이름 없는 시인을 추모한 까닭

2017-03-26     오마이뉴스 이재환 기자

봄기운이 완연하던 어느 날 시인으로 불렸지만 시집하나 남기지 못한 한 젊은 시인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지난 18일 내포문화숲길 활동가를 비롯한 충남 예산과 홍성의 내포 사람들은무명의 시인 하나를 추모했다. 19일은 고 한용수(63년생) 시인의 1주기다.

한 시인은 단 한 번도 시집을 낸 적이 없다. 그 흔한 문단에도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인으로 불린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천생 시인”이라고 했다. 한용수 시인은 지난 2009년 내포문화숲길 초창기 홍보국장으로도 활동했다. 내포문화숲길은 예산군 가야산 일대의 자연환경을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09년 조성됐다.

술을 좋아하고 시 쓰기를 즐겼던 한용수 시인은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카카오스토리에 4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오랜 세월 동안 시를 써왔지만 그는 시집을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 시집을 내겠다고 마음먹었을 무렵 혈액암 선고를 받았다. 한용수 시인은 지난해 3월19일 1년 여 간의 투병 끝에 5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끝내 시집을 내지 못한 것이다. 

한용수의 시는 투박하다. 그가 사용한 시어는 정교하게 날이 서 있지 않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계산된 단어를 사용한 흔적도 없다. 그는 일상적인 언어로 그 날 그 날의 감정을 마치 일기처럼 써서 보관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시, 혹은 그날의 ‘감성’을 어딘가로 전송하고 싶어 했다.

40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시 중 상당수는 ‘여기는 예산입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이는 그가 고향인 예산을 사랑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자신의 감성을 누군가에게 ‘리포팅’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감성의 끝맺음은 늘 예산이다. 그의 감성이 향하고 싶었던 종착역은 결국 사람 그 자체 일지도 모른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에 따르면 한용수 시인은 실제로 사람을 참 좋아했다.

김종대 내포문화숲길 전 사무처장은 “한용수 시인은 술을 마시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고 말했다. 한용수 시인의 시는 끝내 시집으로 엮여 나오지는 못했다.
김영우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사무국장, 이지훈 내포문호숲길 당진지부장 등 그의 ‘절친’들은 궁여지책으로 그의 시 400여 편을 모아 제본을 했다. 가난한 시골의 활동가들은 그렇게 나마 친구의 시집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지훈 내포문화숲길 당진지부장은 “언젠가는 제대로 된 시집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비록 한용수 시인은 떠났지만 그의 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유미경(공방협동조합 어깨동무)씨는 “살면서 무척 슬펐을 때가 딱 세 번인데,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그리고 한용수 시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라고 말했다. 한용수는 시인으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거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물론 시가 잘 읽히지 않는 세상에서 시인으로 성공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럼에도 그는 늘 시와 함께 살았다.

천생이 시인이라서 일까. 시인 한용수는 그가 매일 하늘로 타전했던 기도문처럼 그렇게 짧은 생을 마치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나의 기도는 매일 같습니다/ 조용히 눈감게 하소서 / 하루하루 곁을 떠나는 그림 같은 사랑들/ 아픔 앞에 무릎 조아려/ 눈물 보이기 부끄러워 먼저 떠나게 하소서 흔적 없이…/ (2012. 4. 4. 한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