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56>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2017-04-15     한지윤

소영이의 어머니는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부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했으므로 소리 내며 크게 웃을 수도 없는 처지여서 난처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아주머니, 제가 정석이 방으로 가서 수험공부의 비결을 가르쳐 주고 오면 어떨까요?
소영은 부인에게 말을 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소영이 처럼 좋은 머리라면 대학에 들어가는 것쯤이야 조금도 문제가 아닐텐데……”
소영은 부인이 계속 더 수선을 떨 것 같았고 그러면 앉아 있기가 지루해질 것이 틀림없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정석아, 잠깐……손님이 이리로 오셨어,”
부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문을 열자 컨트리맨은 어느 새 남방셔츠로 갈아입고 머리를 물 적신 타올로 동여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남방셔츠에는 야자나무 잎의 그늘에 반나체의 여자가 우크렐라를 치고 있는 모습이 얼룩덜룩 무늬 놓아져 있었다.
“정석아, 잘 가르쳐 달라고 그래라.”
부인이 함축성 있는 한 마디를 하고 나가 버리자 잠시 동안 소영이와 정석은 묵묵히 얼굴만 바라 보았다.
“옷이 매우 섹스어필하는 핑크색이군요.”
이윽고 컨트리맨이 침묵을 깨뜨렸다.
소영이도 거기에 지지 않고 되받았다.
“입은 옷이 굉장히 알로하 알로하한 알로하군요.”
“그런 것을 여드름 스타일이라고 우린 말하고 있죠.”
“아 그런가요?”
어느새 꺼칠해져 있는 얼굴에 엷은 웃음을 띠고 컨트리맨은 그것이 대단히 만족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자한테도 여드름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는데요.”
“여드름 스타일이라고 하는 건 시골에서 나온 사람이 무턱대고 도시인 흉내를 내려고 폼 잡는 걸 말하죠.”
그는 잠자코 더러운 발바닥의 딱딱하게 굳어진 군살의 껍질을 손톱으로 잡아 뜯기 시작했다.
“젖은 타올로 머리에 띠를 두르면 기분이 좋아지나요? 특공대 같아 보이는 걸요.”
“저는 신체 중에서 머리의 비중이 가장 작습니다. 이렇게 타올을 두르면 모가지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듯이 생각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컨트리맨은 턱에 힘을 넣어 보였다.
“시험에 어느 정도 자신 있어요?”
“글세……”
“안 돼요. 보다 더 쉬운 대학에 가도록 하세요. 이 세상에서 일류학교를 나올 필요가 있는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하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아버지가 일류대학교에 가도록 성화를 부리시니 야단입니다.”
정석은 그렇게 말하곤 반쯤 울상이 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제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더라도, 육체와 정신이 함께 활동하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은 존재가치를 잃게 되는 거죠. 머리보다는 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도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나야 몸은 좋지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난 얼마든지 일하겠어요. 이틀쯤은 잠을 자지 않아도 끄떡없지요. 40킬로 아니, 60~70킬로도 들어 올릴 수 있는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몇 사람이서 표류하다가 절해고도에 상륙했다고 한다면 맨 처음에 무얼 할 것 같아요?”
“왜, 그런 걸 물으시죠?”
“그러한 가정아래 설문을 내면 각 대학의 학생들의 기풍을 가장 잘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예를 들면 Y대학의 학생은 무인도에 표류되었을 땐 맨 먼저 법원과 관료를 만들고 K대학생은 회사와 카바레를 만들고, O대학은 신문과 라디오를 만든다는데……”
“헤에?”
컨트리맨은 흥미를 보이며 눈알을 동그랗게 떴다.
“저는 공중변소와 간이식당과 베드하우스와 암시장을 만들고 싶어요. 야자열매와 물고기를 교환하고 싶고 내 셔츠와 누군가 감추어 가지고 있던 위스키와 바꿀 수도 있을 거고……”
“훌륭하군요. 정석씨는 틀림없이 출세할 거예요.”
“부추기지 마세요, 괜히. 무지무지하게 공부가 지겹거든요.”
“그래서 적당히 농땡이 부리는 거죠?”
“때로는 다 틀렸다고 생각되고……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을 때도 없진 않죠. 잠을 자면 많은 꿈을 꾸면서 가위 눌리는 꿈을 꾸기도 하죠.”
그 단단한 몸으로 자살이니 뭐니 말하는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했었지만 두뇌에 자신이 없는 컨트리맨으로서는 죽는 것 이외에는 이 십자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오늘 밤에 나하고 어딘가 놀러 나가지 않겠어요?”
소영이 넌지시 유혹을 했다.
“가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절대로 안 됩니다.”
“괜찮아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면……가는 편이 건강을 위해서도 좋을 거예요.”
거리에는 날씬하고 아름답고 풍만한 여자들이 넘치듯 활보하고 있었다. 그 여자들이 컨트리맨과 같이 몹집이 우람하며,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상의 남자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고 있는가를 알려 주기위해, 정석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었다. 인간이란 때때로 자신이 잊고 있는 자신들의 다른 모습을 보고 숨을 크게 몰아쉴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소영은 연숙이를 전화로 불러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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