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61>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2017-05-25     한지윤

경성여자 대학과 J대학은 다른 대학에 비해서 일찍 종강을 하고 방학에 들어갔다. 지방 공연이 시작된 것은 8월이 지나서였다.
지방 순회공연을 떠나기 전 어느 날 소영은 혼자서 훌쩍 설악산으로 등산을 갔다.
설악산에는 케이블카가 산정을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소영이 승강장 앞을 곁눈질만 해 보며 그냥 지나쳐 버렸다 등산하는데 케이블카를 탄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고 혼자 걸어 올라가는 것이 더 즐거웠던 것이다.
오르는 도중에 산 중턱에서 소영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정상의 전망대까지 오르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산정에서 맛보는 하늘과 땅은 우주의 신비로움 그대로였다. 산 속을 오르면서 그리고 산정에 올라서서 소영은 잠시 인간사를 잊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 침잠하며 대우주의 품속에 자신이 속해 있는 듯 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감상도 아니며 자기 내면의 세계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느덧 해는 기울어 석양빛이 엷게 드리우고 있었다. 산에서 맞는 석양은 퍽이나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여기저기 간간히 보이던 등산객들도 서둘러 하산하고 있었다.
소영이 혼자 남게 되자 슬며시 적막한 느낌이 들었다. 소영은 하산하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마을에서 묵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집을 떠나 왔으므로 거의 내려 왔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만치 보이는 마을이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따스하게 어슴프레 어둠속에 떠 있는 듯 보였다.
소영은 단체손님들이 숙박하고 있는지 떠들썩한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는 집을 피하여 허름한 초가집 앞으로 갔다. 저녁 안개가 마을주위 숲 속에 내려와 엷게 깔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초가집 마당 안에는 조용히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기에 혹시 소영은 자기를 도둑으로 오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당황하며 변명하듯이 안 쪽을 향해 말했다.
“이곳에서 숙박할 수 있을까요?”
“될 겁니다. 저희들도 여기서 숙박하고 있습니다.”
대답한 사람은 흰 노타이셔츠를 입은 키가 큰 청년이었고 그 옆에는 12~3세 정도의 발육 상태가 좋지 않은 듯한 여자애가 서 있었다.
소영은 초가집 아주머니에게 안내되어 6평 정도의 넓은 방으로 들어섰을 때까지도 그 두 사람은 멍청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채 말도 없이 그 근방의 경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소영은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귀신이나 아닐까, 그들은 어느 순간에 홀연히 초저녁의 어두운 공기 속에 녹아들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저녁식사 때가 되어 그 두 사람이 불려 왔을 때 그러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말았다. 귀신이 밥을 먹을 리는 없는 것이다.
소영은 쓸데없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금 자신이 혼자이기 때문에 생긴 마음의 긴장이라고 생각했다. 초가집에 투숙한 손님은 세 사람 뿐인 것 같았다.
세 사람 앞에 차려놓은 칠이 벗겨진 세 개의 작은 밥상에는 고사리 무침, 물고기의 소금구이, 잎을 잘게 썰어 넣은 호박 무침등 소박한 찬이었지만 등산을 해서 배가 고팠으므로 맛이 있었다.
젊은 남자의 이름은 임영훈 이라고 했고 소녀의 이름은 화인이라고 했다. 그는 의과대학 3학년이라고 했는데 말수도 적고 도무지 웃지를 않았다. 그저 어두운 등불 밑에서도 또렷하게 알아 볼 수 있을 정도고 잘 생긴 코와 넓은 이마를 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대는 언제나 혼자 산에 오르시나요?”
“저의 이름은 소영이예요. 김소영.”
“아, 미안합니다. 댁이 이 집에 들어섰을 때 안개가 자욱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 미지의 여인 같은 이미지를 느꼈기 때문에 이름 없이 그냥 부른 것입니다.”
“네 좋도록…… 저도 두 사람이 마당에 서 있었을 때 마치 유령 같아서 무서웠어요. 귀신인 줄로 알았죠.”
“이상한 밤이군요.”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가 물이 덥혀 졌다고 알려 왔다.
“먼저 씻으시죠.”
소영이가 말했다.
“소영씨가 먼저 하십시오. 전 흙투성이여서 퍽 더러우니까……”
“그래요?”
“괜찮으시다면 화인이 하고 같이 하시죠.”
“그럼, 그렇게 하죠.”
“부엌에는 산마을의 집답지 않게 타일이 깔려져 있었다.
“화인이는 몇 살이지?”
“중학교 2학년.”
중학 2학년생으로서는 너무 밋밋하게 달라붙은 가슴을 하고 있었다. 이 중학생의 엉덩이에는 아직도 갓난아이의 푸른 반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신체가 빈약했다.
“같이 온 사람은 화인이 오빠야?”
소영이가 묻자 화인은 아니라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럼, 누구지?”
“집 근처의 절에서 사는 오빠예요.“
“그래?”
도무지 두 사람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화인이는 그다지 머리가 좋은 것 같지 않았다. 소영은 결국 두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마음을 정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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