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독립운동가 이근주 열사 선정

홍성 출신으로 을미사변 때 홍주의병 참여

2017-11-09     허성수 기자

홍성 출신 이근주(李根周, 1860-1910)가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이근주는 철종 11년(1860)에 태어났으며, 그의 자는 문약(文若), 호는 청광(淸狂)이며, 본관은 전의다. 그의 부모는 1860년 계룡산 아래 공주의 비룡동으로 이사해 그해 10월 초하루에 이근주를 낳았고, 그가 6살 때 다시 홍주의 작현리로 이사했다. 이근주는 어려서 부친한테 한문을 수학한 뒤 주로 산사에 들어가 혼자 학문을 깨치고자 하였다. 22세 때인 1881년에 공주의 마곡사 위에 있는 부용암(芙蓉菴)에서, 다음 해는 덕산사(德山寺)에서 공부했다.

특히 맹자의 웅어장(熊魚章)을 좋아했다. 이에 따라 사생취의(捨生取義) 정신을 숭상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에 항의하여 일어난 홍주의병에 참여했다. 김복한 등 주도자들이 체포된 뒤에는 조의현 등과 재기를 시도했다. 뜻을 이루지 못하지 울분을 이기지 못했다. 이로부터 천식과 다리가 마비되는 병이 생겼다.

그는 을미의병 이후 홍주의병 기록인 ‘을미록’을 비롯한 여러 항일사적을 편찬했다. ‘절의가’에서는 삼강오륜을 지키고 인수(人獸)와 화이(華夷)를 구별하는 나라가 매군매국(賣君賣國)의 무리에 의해 더럽혀짐을 한탄했다. 이 외에도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민영환의 순국을 기린 혈죽시(血竹詩)와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올리고 풀려난 직후인 1906년 순절한 홍주의병장 이설에 대한 만사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1910년 국치의 비보를 접하자 그는 부모의 묘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자결했다. 그는 국운이 다하였으며, 성인의 도도 끊어짐에 살아갈 마음이 없다고 했다. 일본한테 나라를 빼앗긴 것은 너무나 분통하고 부끄럽고, 또 싫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