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니라 왜 염소인가?

홍주고 출신 채정옥 작가
먹물로 그려낸 진한 농담

2018-02-09     김옥선 기자

작품을 보는 일은 작가의 내면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캔버스에 먹물로 그려진 커다란 나무에 액자 형태의 작은 그림들이 들어가 있다. 빨간색 지붕의 집, 염소, 그리고 액자 곳곳에 그려진 어릴 적 작가의 모습 등은 한편의 이야기 같다. 채정옥(31)작가는 홍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남대학교 예체능학부 회화과 졸업,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내포미술협회 회원이다.

채 작가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홍동면 본가로 돌아와 한동안 미술학원 담당강사를 지냈다.그러나 그 시간이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직장생활이 잘 맞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상상하는 미술이 아닌 획일화한 교육을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이후 학원을 그만 두고 과감하게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다. 다행히 그 곳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들을 했다. 시간과 경제력만 된다면 언젠가 꼭 한 번 외국에 나가 생활하고 싶다.

박혜선 작가와의 친분으로 갤러리 짙은을 방문했고 전시회 제의를 받았다. 지금까지 참여 전시는 많지만 개인전은 처음이다. 채 작가는 작품을 준비하며 염소를 떠올렸다. 어릴 적 채 작가의 집에는 동물들이 많았다. 닭과 개, 염소, 고양이 등 그 먹이를 주는 일은 늘 채 작가의 담당이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먹이를 들고 염소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염소는 말간 눈으로 채 작가를 바라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았다. 사람과 만나는 순간 매번 움츠려드는 자신을 염소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채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는 문득 도심 속 상가 쇼윈도우에 비친 염소를 보았다. 어느덧 염소를 닮아 있는 자신을…. 간혹 스치는 신원미상의 군상에게 소리 없이 건조한 슬픔을 직감한다’고 말한다. 전시회 이후 아버지는 “염소 한 마리 더 사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억눌린, 그리고 채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종이에, 캔버스에, 나무에 부드럽게 혹은 꾹꾹 눌러 담는다. 내가 염소가 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림을 그림으로서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채 작가의 먹물로 그려낸 깊은 마음의 농담이 당신의 마음에 잔잔히 퍼지기를 바래본다.

한편 채정옥 작가의 ‘나는 내가 아니라 왜 염소인가?’ 전시회는 오는 3월까지 서부면 속동갯벌체험관 2층 갤러리 짙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