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닦이에서 시작해 교수가 되기까지

청운대학교 조리명장 이상정 교수

2019-01-27     김옥선 기자

500원 들고 무작정 상경… 명동 코스모폴리탄 접시닦이 시작
방송통신고등학교 다니며 학업… 관광학 박사에서 교수까지
2002년 조리명장 선정돼… 전국에서 5명, 홍성군에서는 유일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더라도 어떤 이는 최고 장인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그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최고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기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그만의 노력이 숨어있다.

시골에서 농부로 살기를 거부한 한 소년은 부모에게 받은 500원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간 시골 소년은 생활의 최전선에서 공부하고 돈을 벌었다. 그 소년은 이제 다음 달 명예롭게 교수로 퇴임을 앞두고 있다.

청운대학교 호텔조리식당경영학과 이상정 교수가 가진 타이틀은 수없이 많다. 1977년 한화개발주식회사 플라자호텔에서 쿡 헬퍼로 근무하며 조리사 보조업무, 1978년 그랜드하이야트호텔 조리부 과장을 역임하며 휴고스키친쉐프 레스토랑 총괄담당, 1987년 그랜드힐튼호텔 조리부 총괄, 리츠칼튼호텔 조리부 총괄, 2000년 JW메리어트호텔 조리부 총괄, 2004년 영산대학교 호텔관광대학 조리학부장, 2006년 서경대학교 호텔조리학과 부교수, 2007년 청운대학교 호텔조리식당경영학과 교수 역임까지 그야말로 그 스팩트럼이 다양하다.  

■ 접시닦이에서 시작한 조리사생활
이 교수의 화려한 경력 뒤에는 그만의 노력과 내공이 숨겨져 있다. 1953년 충북 보은 출생인 이 교수는 서울로 상경해 1968년 당시 고모가 운영하던 명동의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못 했다고 후회를 하지는 않았는데 막상 호텔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니 공부가 필요했다. 일단 영어를 공부해야 했다. 수많은 외국인들과 몸짓과 발짓으로 소통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도 이태원으로 이사를 했다.”

1992년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을 시작으로 1994년 경희대 호텔경영전문대학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경희대 호텔경영전문대학 지배인 과정을 수료, 초당대학교 조리과학과 졸업, 청운대학교 경영학 석사, 경기대학교 관광전문대학원 관광학 박사 등을 마쳤다.
그러나 모든 인생에는 고비가 있는 법, 이 교수에게도 한 때 고비가 왔다. 잠시 보증 문제로 가정이 위기에 흔들렸다. 이 교수는 낮에는 호텔에 다니며 일하고, 밤에는 음식 관련 컨설팅과 틈틈이 학교를 다니며 그 시간들을 극복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고비가 있고 어느 시기 후회를 하는 시기가 있다. 그렇다고 삶을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그 때마다 내 인생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장에도 도전했다.”

조리명장은 노동부에서 각 분야에 종사하는 장인들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힘든 여건 속에서도 장인정신을 잃지 않고 한 길을 걸어온 실력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특히 조리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5명밖에 받지 못한 만큼 그 진가가 드러나는 일이다. 이 교수는 지난 2002년 조리명장으로 선정돼 조리 부문 최고 반열에 올랐다.

■ 후학 양성에 힘쓰다

“어깨 넘어 배워 조리부장까지 했으니 어느 순간 내가 배운 것들을 가지고 후학을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에게 조리부문의 틀을 만들어주고 우리나라 식문화 발전에 힘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교수는 싱가포르, 독일 등 국제요리대회에 후학들과 참가하며 후배들에게는 국제요리대회의 경험과 견문을 넓혀주기도 했다. 이와 함께 각 지역 활동에도 부지런히 참여했다. 2008년 홍성 내포축제 조리경진대회 심사위원장과 홍성군다문화축제 심사위원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서울 시푸드레스토랑 무스쿠스, 마키노차야, 스카이온 등 뷔페레스토랑 등은 이 교수가 참여, 컨설팅해 문을 열은 곳이다.

이 교수의 요리 전공은 불란서요리다. 블란서요리는 서양요리의 모채로 왕실에서 먹던 음식이다. 캐비어, 푸아그라, 달팽이 등 사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화려한 요리보다 프랑스식 가정 요리가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다.

정작 이 교수는 집에서는 요리를 잘하지 않는다. 가정에서는 당연히 부인이 해주는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음식에 대해 전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지 않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다가오는 명절, 가정에서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 한 가지를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이 교수는 “사 먹는 것이 제일 좋다”며 웃음 가득한 답변을 내놓으면서 연어스테이크와 레몬크림소스 레시피를 공개했다.

연어는 소금과 올리브오일로 살짝 코팅한 후 껍질 쪽을 제외한 세 면을 노릇노릇하게 익힌다. 대파 흰 부분과 비트는 채 썰어 찬물에 담그고 시금치는 양파와 함깨 볶는다. 레몬크림소스는 화이트와인을 넣어 조린 후 크림을 넣고 다시 조린다. 불을 끄고 버터, 달걀노른자, 레몬 쥬스 등을 넣고 섞어 약한 불에 올려 농도를 맞춘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접시에 연어와 시금치를 놓고 대파와 비트 썰은 것을 보기 좋게 담은 뒤 레몬크림소스를 곁들인다.  

퇴임을 앞두고 이 교수는 마음이 가볍다. “퇴임하더라도 주변에서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예측은 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일이더라도 후회 없이 부지런하게 내 일을 할 것이다.”

조리에 모든 인생을 걸었던 한 소년은 이제 어느덧 퇴임을 앞두고 있다. 퇴임을 앞둔 이 교수의 모습은 지나치리만큼 발랄하고, 유쾌하며, 의욕적이었다. 날렵하기까지 한 이 교수의 희끗한 머리카락 사이 그 어딘가 쯤에는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고 또 다른 인생의 업그레이드를 꿈꾸는 또 다른 이상정이 숨어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조리는 예술을 담은 철학이라는 명제를 모든 조리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이 교수의 삶을 응원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