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기여라 존게 좋소, 흥겨운 가락이 흐르는 덕우마을

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
농촌마을 희망스토리-결성면 용호리 덕우마을

2019-02-22     김옥선 기자

결성면 용호리는 조선시대 결성군 용천면 지역으로 와룡천이 용의 허리처럼 됐다해 용허리 또는 용호리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산리, 두지동과 와리, 덕우리, 압곡리의 각 일부와 현내면의 박철리 일부를 병합해 용호리라 해 홍성군에 편입됐다. 덕우마을은 용호리의 북서쪽 끝에 위치하며 결성면에서 가장 큰 들판인 용호들에 접해있다. 용호들은 서산 AB지구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으로 그보다 더 이전에는 바다였던 지역이다.
덕우마을은 조선시대 결성의 큰 장이었던 용호장이 열렸던 곳이다. 용호장은 광천장과 함께 홍성의 3대 시장으로 꼽혔었다. 특히 용호장의 소전은 장항선 내 가장 큰 시장이었다고 한다. 바닷길이 막히면서 용호장의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 폐장됐다. 덕우마을 조광성 이장은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용호장이 폐장된 가장 큰 이유가 와룡천이 범람하면서 몇 번이나 큰물이 침범하면서 폐장됐다고 한다”고 말한다.

영당의 북쪽을 ‘장도로’라 부르기도 하는데 장이 설 때 주막거리였던 곳이다. 장이 흥하던 시절 덕우 사람들은 장터 주인에게 텃세를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서부 사람들이 편히 지나가지 못한다는 말도 전해진다. 한편 용호장에 대한 전 결성초등학교 장현철 교장의 시 ‘용호장 날’이 전해지기도 한다.

제멋대로 모이네 무엇을 하려/나뭇가지 곱게곱게 단정시켜 업고가네/깎으려 대드는 사람을 물리치고/하루종일 떨고 파는 것이 삶의 길인가/제멋대로 모이네 무엇을 하려/우는 아기 떼우고 닭 울기 무섭게/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사람을 찾아/우는 아기 생각하며 하는 것이 삶의 길인가.

 

조광성 이장은 1993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부쇠로 활동하기 시작해 현재는 결성농요 상쇠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으며 충남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이기도 하다. 덕우마을에는 김창룡이라는 판소리 대가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만큼 조 이장의 소리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현재 소리에 대한 예능보유자가 없어 걱정이다. 예능보유자가 지정되어 결성농요가 잘 보존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또 작년에 결성면에 태어난 아기가 단 한 명도 없다”며 걱정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또한 조 이장은 지난 2001년에 이장직을 맡아 지금에 이른다. “처음 이장직을 맡은 것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군대 갔다 와서 이장을 맡았는데 그때만 해도 참 힘들었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갈산과 홍성금융조합에 내 개인 돈을 들여 공제를 들어야 비료를 받아 배분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리 단위 이장들이 파산한 일도 많았다.” 현재 덕우마을 가구수는 25가구이며 공가가 3~4가구에 이른다. 양지말 샘이 있는 곳을 양지터, 마을회관이 있는 곳을 장터라 부른다.

양지말 샘은 예전부터 마을주민들의 샘원이었다. 한 마을주민은 “양지말 샘이 물이 좋아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추운 겨울에도 얼은 빨래를 그 물에 빨면 노곤노곤해졌다. 지금은 각 가정마다 수돗물이 보급되면서 허드레 물로만 사용한다”고 말한다.

서산 AB지구 방조제 건설 이전까지 덕우마을은 홍수 피해가 심각한 지역이었다. 덕우 마을주민들은 주로 자은동 앞, 미나골, 방죽들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하천이 범람하면 이 일대 농지를 휩쓸어버렸다. 이후 방조제 건설과 경지정리를 했는데 덕우마을 농경지가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농사는 안정화됐다. 조 이장은 “마을에서 거의 대부분 벼농사를 많이 짓고 돼지 집이 4가구, 소를 키우는 집이 1가구인데 우리 마을 대부분의 가구들이 노후여건을 거의 다 마련해놓아서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설명한다. 현재 덕우마을 주민들은 주로 홍성장과 광천장을 많이 이용하지만 거리가 가장 가까운 갈산장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