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장서'를 아십니까?

[인터뷰] 최갑수 광복회 홍성군지회 부회장

2009-08-13     이은주 기자

광복 64주년을 맞아 나라를 잃었던 고난의 37년을 되돌아보며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고자 최갑수 부회장(광복회 홍성군지회․71)을 만났다.

"파리장서를 아십니까? 아마도 우리 후손들 중 파리장서에 대해 알고 있거나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파리장서는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피해실정을 밝힌 글로써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평화회의에 제출하여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기 위하여 곽종석이 대표로 추대되어 글을 짓고 곽종석, 김복한 등 전국의 유림대표 137명이 연서한 1420자의 장문의 독립청원서입니다. 이 독립청원서를 갖고 상해로 건너가 파리평화회의에 보내 일제의 침략상을 세계만방에 폭로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 파리장서 사건의 137명중 한 분이 바로 제 증조부(고. 최중식)이십니다."
 
홍성읍 월산리 육교 옆 조그만 슬레트 지붕의 한 식당에서 만난 최 부회장과의 첫 대화는 󰡐할아버지 최명용 선생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시작됐다. 

"제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적에 잠을 자고 있는데 다락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다락방에서 할아버지께서 두터운 털옷을 입고 무엇인가를 드신 듯 입 한가득 물고 허리 춤에는 육혈포를 차고 내려오시는 거예요. 너무도 놀랍고 무서워 할아버지를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할머니가 무언가를 베보자기에 싸주니 할아버지는 허리춤에 메고 급하게 나가시더군요. 잠시 후 밖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일본 순사들이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더군요.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무사히 빠져나가신 것 같았어요."
 

최 부회장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였던 최명용 선생의 장손자이다. 여기서 최명용 선생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1897년 1월 서산군 태안면 어은리에서 최중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되던 해 홍성군 결성면 형산리로 이주, 아버지와 동문수학한 지산 김복한의 문하생이 된다. 이때부터 전통적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 정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17세에 고령박씨와 결혼한 최명용 선생은 홍동면 구정리로 호적을 옮기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에서 밀파된 이규준(초대 부통령 이시영의 조카) 등과 연락을 맺고 독립군 활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한다. 1921년 2월 22일 친일분자의 밀고로 경찰에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항일민족자존을 위해 일생을 바친 최명용 선생은 1965년 8월 10일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1986년 대통령 표창이 서훈돼 홍성읍 옥암리 소재 산 묘소에 묘비를 세워 그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있다. 

"일본순사들도 할아버지를 막 대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호서유림의 대표격인 할아버지를 그 사람들도 예우를 갖추어 대한거죠. 지금 이곳이 제가 태어난 곳이자 할아버지(최명용 선생)께서 태어나 해방 후 일제하에 숨어 지내던 곳으로 군내 항일 인사들이 모여 향후 대책을 세우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세월의 흔적으로 낡아진 부분을 조금씩 보수해 놓은 흔적이 있지만 최대한 원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최 부회장은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고 한다. 최 부회장은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기 위해 지난 4일 독립기념관에 유품과 자료를 기증하기도 했다. 

"광복회는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훈․포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본인과 그 유족으로 구성된 국가공법단체입니다. 대일항쟁 전 기간(1895~1945년)에 걸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안위, 전 재산마저 광복제단에 바쳐가며 치열하게 독립투쟁을 펼쳤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그 유지를 받들기 위해 설립된 단체입니다." 광복회 홍성군지회(지회장 윤중섭)는 2007년 8월 27일 홍성읍 오관리 호서양조장 2층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한 상태이다.
 
현재(2009년 6월 기준) 광복회는 전국에 12개 시도지부와 73개 지회가 설립되어 있으며, 회원수는 총 6646명(유공자 본인 194명, 유족 6452명)이다. 홍성군지회 회원은 44명으로 보령지역 회원 7명이 포함되어 있다. 

주요사업으로는 민족정기 선양사업으로 △중요행사 주관 및 정부행사 참여 △학술회의 및 홍보사업(매월<광복회보> 발행) △순국선열묘소 정화 및 순국선열 추모행사 △국내외 독립운동 유적지 순례행사 △사적지 복원사업 및 동상건립 △기념시설 건립지원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파리장서기념사업회를 추진해서 민족정체성교육의 요람이 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의 뼈아픈 과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이제 많지 않습니다. 광복회 회원들의 평균연령이 75세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향후 10년 내에 광복회가 존폐의 위기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꿈이 있다면 군내 항일 인사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했던 이곳(최명용 선생의 생가지)을 '독립정신의 산실'로 보존하여 후세들에게 애국애족 정신을 대대로 전승 고취 시킬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 계획입니다"고 말하는 그의 마음이 벌써부터 분주해진다. 

홍주신문 제85호(2009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