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구두

2010-11-26     권기복(시인, 홍주중학교 교사)

 

당신은 짐을 탈탈 떨고 길을 떠났지요
당신 무게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무거웠던 삶,
그 버거운 무게를 깨끗이 비웠군요
당신이 마지막 떠나던 길은
그저 평안하시라고
당신이 남긴 유품마저 연기가 되었어요
눈물방울에 흠뻑 젖은 뜨락이 메말라 갈 때,
마루 밑, 그늘 속에 남은
구두 한 켤레
그러고 보니 당신은 맨발로 떠나셨군요
엇비스듬히 뒤축이 닳은
당신의 구두를 꺼내어 신어 봅니다
발목까지 깊숙이 파묻히는 구두,
어느 새
당신의 짐이 내 등짐이 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