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 이수 몰라 못 가나”

2011-07-14     김선미 디트뉴스 편집위원
“앉은뱅이 이수 몰라 못 가냐”
평소 집안일에는 관심도 의지도 없는 내가 이와 관련해 아주 가끔이지만 어머니에게 이러저런 잔소리를 할 때가 있다.

어머닌들 딸의 타박이 듣고 싶을까마는 평소 말수도, 말주변도 별로 없으신 어머니는 대부분 처음에는 가만히 듣고 계신다. 그러나 어느 순간 촌철살인 같은 멘트가 날아온다. 손톱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입만 살아가지고 나불거리던 나는 찔끔할 수밖에.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앉은뱅이’라는 말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고 단지 우리 속담을 전해오는 그대로 전하는 표현의 방법이라는 것을. 여기서 이수는 ‘理數’를 말한다. ‘앉은뱅이’가 길을 떠날 수 없는 것은 거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다리가 불편해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걸을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 몰라서 안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회창, 심대평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한다면...
지난 4월에 이어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과의 통합문제, 더 나아가 충청권 정치세력 대동단결 논의를 보면서 문득 이 속담이 떠올랐다.

충청권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선진당과 국민중심당과의 합당이 우선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충청인 모두가 동의하는 안은 아닐지라도 이를 원하는 세력은 분명히 있다. 이유야 제각기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두 당 모두 장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쯤은 누구나 체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초 한 뿌리였던 지역에 기반한 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에게는 아마도 절체절명의 절실한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총론에서는 동의를 하면서도 동상이몽 탓인지 각론은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통합에 적극적인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가 더 큰 자유선진당이다.

세대교체를 내세우며 대표직을 사임한 이회창 전 대표는 선진당의 쇄신을 요구하는 심대평 국민중심연합 대표를 향해 “先 통합 後 쇄신”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획기적인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또 ‘새로운 젊은 정치세력의 탄생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자신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탄생을 위해 기꺼이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들은 충청권 대통합을 위해서는 자신은 이제는 한 발 뒤로 물러나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들린다. 이를 확대하면 자신이 대표직을 내놨듯 심 대표도 그러기를 바라는 것 같다. 당을 합할 경우 자신들은 이선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세대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그렇다고 이 전 대표가 내년 총선까지 포기할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심 대표는 이 전 대표와는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당을 나오게 된 과거의 앙금 혹은 섭섭함 때문인지 충청권 통합이라는 원론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선진당의 환골탈태와 쇄신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충족됐을 경우 자신의 거취에 대한 발언은 아직 없다. 심 대표도 쪼개졌던 당이 아무런 변화나 쇄신 없이 도로 그대로 합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지역민들로부터 동의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두 당의 통합이 왠지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은 통합을 말하는 두 당에서 동상이몽의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앉은뱅이’가 이수를 알고 있는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은 너무도 간단하다. 협력자를 구하고 자신을 희생하면 된다. 우리는 이 속담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장님이 앉은뱅이를 목마 태우고 함께 가는’ 아름다운 장면 말이다. ‘앉은뱅이가’ 거리를 알고 있으나 자신이 걷겠다고 우기거나 ‘장님’이 자신이 길을 안내하겠다고 고집했거나 혹은 힘드니 업지 않겠다고 뻗댔으면 결코 목적지에 갈 수 없었었을 것이다.

너나할 것 없이 당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이라도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정치판에서 당을 위해 지역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원로들이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는 모습을 희망하는 것은 연목구어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전 대표나 심 대표가 후진을 위해 내년도 총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적어도 지역구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통합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모 정치인처럼 비례대표 1번을 가져가면 곤란한 일이지만 말이다.

자기희생 없는 쇄신은 공허할 뿐이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실천인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진정성과 신뢰 확인이다. 지역 정치계 원로들의 행로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