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운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있다. 즉, 국왕과 정치는 민심을 살피고 백성을 안락으로 이끌 때 비로소 하늘의 도를 올바르게 실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민심은 절대군주를 견제하는 최고의 권력이며, 민심을 정확히 살펴서 백성의 어려움을 국왕에게 바르게 전달하여 국왕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남용을 막는 것이 신하의 도리이자 정치의 근본이라 하겠다.
백성이 아우성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빈곤 때문이다. 부자들의 시혜적 입장에서 시작된 서양의 사회복지에서는 빈곤의 원인을 다음의 세 가지로 말한다. 기능주의 이론은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하며, 갈등주의 이론에서는 사회제도가 공평한 분배를 실천하지 못한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상호작용주의 이론은 개인의 심리를 강조하여 사회구성원들이 상대적으로 빈곤집단에 대해서 나태하고 부도덕하며 의존적 집단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부정적 견해(낙인)를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빈곤이 지속된다는 견해를 주장한다.
동양정치의 근본을 가르치는『주례(周禮)』의《대사도(大司徒)》에서는 열 두 가지 황정(荒政;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이는 바른 임금들이 마음을 다하던 일이라고 했다.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는 영조를 대신해서 전국의 민심을 살폈고, <국정보감>의 기록에 따르면 영조 경진년에 흉년이 들자 친히 흥화문에 나와 유망(流亡)걸식자 100여명에게 죽을 먹였고, 그 중 한 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직접 맛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려사>에는 충선왕이 흉년이 들자 백성들을 생각하여 반찬의 수를 줄이고 백성들이 먹는다는 도토리를 먹었다고 적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사회복지의 갈등주의 이론과 같은 맥락으로서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백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살피는 것은 바른 정치 즉, 사회구조적 문제를 파악하려는 노력이며, 황정의 시행은 그것의 실천을 말한다고 하겠다.
불교의《현우경》에는 다음과 같이 백성의 경제를 나라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왕이 동산에 나가 놀다가 백성들이 땀 흘려 일하는 것을 보고 신하에게 물었다. “나라의 백성들이 왜 저처럼 힘들여 일하고 있는가?” 왕의 물음에 신하가 대답하였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곡식을 목숨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저렇게 일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 할 수 없을 것이요, 백성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면 나라는 곧 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왕자로 있을 때 부왕을 따라 농경행사에 참석하여, “왜 아버지와 관리들을 위해서 백성들이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 이때까지 나의 부귀영화가 저들의 피땀으로부터 나왔다면 이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라고 탄식했던 맥락의 것으로 바른 정치를 통한 고른 분배의 실천으로 백성들을 안락케 하는 것이 군왕의 도리임을 말한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를 이룩한 스웨덴의 국회의원들은 주당 80시간의 일이 너무 힘들고 벅차서 30%가량이 스스로 다음 선거를 포기한다고 한다. 이것은 공천과 재선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당의 이익을 위해서 날치기법안 통과 등으로 국민들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우리나라 국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다시 말하면 스웨덴은 국가운영에 있어서 빈곤은 개인들의 문제라고 보았던 시혜적 차원의 복지에서 벗어나 갈등주의이론의 사회제도적 문제에서 해법을 찾았고, 정치인들은 주례에서 말하는 바른 정치와 붓다가 말하는 국가운영의 근본을 받아들임으로써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이룩하였다.
이와 달리 세계의 절대빈곤국들은 자본과 결탁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초강대국인 미국에게 국내 자원과 국민들의 노동력을 헌납했다. 예를 들면 미국과 다국적 자본이 장악한 ‘베네수엘라’나 ‘나이지리아’와 같은 산유국들의 국민들은 석유를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노동력을 제공하고 환경파괴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면서도 실질적 생활은 농사를 짓고 살 때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와 제도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따라서 빈곤의 궁극적인 책임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른 분배를 실천하지 못하는 정치권에 있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삼세(三世)성인의 가르침인 백성을 하늘로 섬기기는커녕 개인과 붕당의 이익을 위해 이전투구와 권모술수를 일삼고 있고,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이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대해서 물대포를 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