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사람들
지난 가을 황금빛 들녘에는 이리저리 트랙터들이 왔다갔다 분주히 움직였다. 벼를 추수하고 있는 모습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뿌연 추수기의 먼지가 날리고, 그 사이를 낡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분주히 움직였다. 수업 중에 슬쩍 창밖으로 본 것이었지만 그 진풍경이 기억에 또렷이 남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빨간 트랙터, 노란 들녘, 한 해 동안의 결실을 걷는 가장 든든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보는 사람들도 밥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으니까.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 농업의 중요성이 나온다. ‘농업은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 한다. 직업으로서의 농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인간의 기본 요구이며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에너지 공급원인 식량을 생산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그 사회적 공헌도가 매우 크다’ 인간의 기본 요구. 밥이 없고, 쌀이 없고, 작은 초록 생명들이 없다면 우리들은 살아갈 수 없다. 농사를 짓는 것에는 큰 의미들이 많다. 가장 옛날부터 이뤄져 온 우리네 농사는 그 기본적인 것만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농사를 지음으로써 한 마을에 공동체가 이뤄지고 그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더불어 살았다. 두레 품앗이 같은 함께 일하는 풍습과 흥겨운 풍물과 일하며 부르는 민요는 구성지고 즐거웠다. 지금도 남아있긴 하지만 거의 사라져 가는 중인 민요는 정말 하나하나가 특색 있고 구성지다.
몸이 고되고 배부르진 않았지만 그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돕고 여럿이 모두 함께 즐기며 살 수 있었다. 농사는 밥을 만들어 내고 사람을 키우고 사회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농사를 짓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직업으로 대농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옛날과는 달리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써 농사를 짓는다. 옛날 같진 않아도, 여전히 우리가 먹을 작물을 키워내고 있는 건 같다.
한 해 동안 고생해서 농사를 짓고 또 그 대가를 받아 살아가는 농민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그들의 땀방울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삶이 결코 저 자신을 위한 삶만은 아닐 거라 생각된다. 투박하고 거친 손, 그을린 얼굴, 낡은 작업복,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민들의 모습은 참 소박하고 수수하다.
지난 달 22일 그런 그들에게 커다란 대못을 쿵쿵 밖아 버린 일이 있었다. 한미FTA, 결코 우리들은 웃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한미FTA협상안이 날치기로 체결됐다는 소식을 들은 농민들은 눈물을 흘린다. 몇 차례의 큰 위험들이 농민들을 위협했다. 한 차례, 두 차례 겪으면서 도저히 살지 못하겠다고 자살하는 농민과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농촌을 떠나 삼류 도시에 청소부나 막노동판의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이런 현상들은 반복되고 있는데 그 무거운 등에 또다시 큰 짐을 지어준 한미FTA. 그 한미FTA 속에는 농민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독소조항들이 많다. 그 독소조항들은 눈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한미FTA를 현실의 눈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챙기며 바라볼 때라고 생각한다.
다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얼굴에 은은히 퍼지는 땀이 전 짭짤하고 수수한 웃음을 보고 싶다. 더 이상의 눈물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