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새해 기도는
그리 정신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 노동은 일하는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필자의 경우 마당을 쓸거나 잡초를 뽑으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나 좋은 글감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지난 해 마지막 날 기상청은 비나 눈이 오는 관계로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없다고 예측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일기가 고르지 못하면 내일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올라오지 않겠네요?” 하시는 공양주보살님의 물음에 “지난 몇 년 동안의 경험에서 본다면 날씨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올라옵니다”하고 대답했다.
아침예불을 드릴 때 까지만 해도 가랑눈이 내리더니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올라갔다 내려간 3~4시간 동안 많은 눈이 쌓였다. 오후가 되어 눈이 그쳤고, 치우려고 나섰으나 사람들이 밟아 다져진 관계로 어쩔 도리가 없어 다음날 치우기로 했다.
예전에는 빗자루로 쓸어 내거나 넉가래를 사용했지만, 요즘은 농사일에 쓰이는 농약살포기의 바람으로 날려 보낸다. 하룻밤이 지난 뒤에 눈을 치우기로 한 것은 기온이 적당하면 농약살포기의 강력한 바람이 밟혀 다져진 틈새를 파고들면서 조각조각 떨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6시! 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보일러실에서 잘 말려놓은 등산화를 조여매고 농약살포기 연료통에 혼합유를 담은 페트병 몇 개를 챙겨 넣고 눈치우기 작전에 돌입했다. 그런데 어제의 예상과 달리 밟혀 다져진 눈은 농약살포기의 바람에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생이 만든 모자이크의 빈자리처럼 군데군데 밟히지 않은 눈이라도 치우겠다는 요량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다져져서 얼음으로 변한 눈은 한걸음 한걸음을 조심스럽게 했으며, 디딜 자리가 마땅하지 않아 엉거주춤한 자세로 멀리 내딛었다가 다시 중심이동을 할 때는 미끄러졌고, 아차 하는 사이에 몇 번의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1.5ℓ짜리 페트병의 혼합유를 4통이나 사용한 뒤에야 일을 마쳤으나 여전히 자동차운행은 불가능했다.
사람들이 밟지 않았다면 3시간이면 거뜬한데 무려 5시간을 치우고도 차량운행이 불가능하니 참으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새해 일출이니, 황금돼지 해이니, 흑룡의 해이니, 분주를 떨지만 수행자의 눈에는 전혀 부질없는 일이다. 물론 어떤 의미(의식)를 통해서 자신의 행동이 변화 된다면 모를까 일출을 보고 한해의 운세를 본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원효스님은『대승기신론소』에서 기도(祈禱)의 ‘빈다’는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전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단어임을 밝히고, 중국의 주석가들이 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참된 마음’, ‘고요한 마음’, ‘깊은 마음’, ‘지극히 큰마음’, ‘지극히 세밀한 마음’ 등을 말하는 것으로 중생의 생각과 행동을 깨끗이 하고 바르게 이끌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새해의 기도는 일출에 있는 것도, 운명을 점치는 책속에 있는 것도, 그렇다고 종교적 행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성현의 말씀에 의지하여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때 비로소 행복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눈을 치우며 ‘눈이 내리고 있어 일출을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산 정상에 올라야 직성이 풀리는 즉, 행복을 밖으로부터 구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할 텐데’라는 걱정에서부터, 차도(車道)를 함부로 밟아 놓으면 산에 사는 사람은 며칠씩 고립된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썰매까지 타고 내려간 흔적을 보며, 새해에도 중생들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혼탁할 수밖에 없다는 허망한 예측을 해보았다.
눈을 밟으면 치울 수 없다는 것, 자동차는 눈길에 미끄러진다는 것, 해발 400m고지는 평지보다 응급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 염화칼슘을 뿌리면 자연이 파괴된다는 것, 길 가장자리로 다녀도 통행에 불편이 없다는 것 등 모두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리고 시산제와 일출행사를 추진하는 사람들 역시 많은 사람들의 이동으로 위와 같은 불편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과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었다.
이처럼 상식과 배려가 없는 새해의 일출보기 행사는 오히려 행복의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 버려야할 욕심을 부추기는 일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 역시 미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살피고 이해하여 새해에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 ‘남을 배려하는 사회’, 그것을 통해서 우리 모두 소통과 화합으로 행복한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제안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