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기사 (17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여사울성지 성당은… 여사울성지 성당은… 여사울 신앙공동체는 내포 천주교회의 발상지가 되면서 박해의 중심지가 됐다. 1791년 신해박해, 1801년 신유박해에 이어 1839년 기해박해 등 수난의 역사가 계속됐다. 특이한 점은 일부 공동체의 경우 박해가 집중되면 남은 신자들은 위협을 피해 흩어지거나 이주하면서 와해되는 일이 많았지만 여사울은 그렇지 않았다. 이후 1866년 병인박해 시기에도 여전히 순교자들이 발생하는 등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다.이존창은 서울에서 한국천주교 창설멤버였던 권일신 신부에게 교리를 배웠으며, 1786년 세례를 받고 평신도 사제직이라고 할 수 있는 가성직(假聖職) 신부로 임명됐다. 이후 고향에 내려와 김대건(1821~1846)의 종조부 김종현, 조부 김택현을 비롯해 여사울 지역에 기획특집 | 한관우 발행인 | 2014-07-17 16:19 조선에서 가장 컸던 교우촌 신리성지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 기념관 조선에서 가장 컸던 교우촌 신리성지 솔뫼성지에서 남서쪽으로 6㎞ 정도 떨어진 당진군 합덕읍에 소재한 신리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초기부터 신자와 순교자를 끊임없이 배출한 대표적인 곳이다. 이곳엔 성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와 조선의 제5대 교구장 성 다블뤼 안 주교의 주교관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2006년에 지은 성 다블뤼·성 손자선 기념성당은 가톨릭교회가 내세운 고딕양식이 아닌 현대식 건축양식으로 축성됐다. 성지 인근에는 32기의 머리 없이 발견된 무명 순교자의 묘와 14기의 손자선의 가족 순교자 묘 등 40여기에 달하는 순교자 묘가 공동으로 안장돼 있다. 신리성지에 기획특집 | 한관우·김경미 기자 | 2014-07-24 15:59 홍주성 복원, 홍주천주교 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1> 홍주성 복원, 홍주천주교 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선교사들 입국 이전에 이미 자발적으로 신앙공동체 형성천주교 전래 초기 100년, 정부 대규모 탄압 순교자 탄생홍주천주교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복음전파의 못자리이존창 여사울에서 선교 후 홍주지역 천주교 급속히 확산 현재 홍성지역의 역사문화적 상징인 홍주성 복원사업이 한창이다. 홍주성 복원의 또 하나의 핵심에는 ‘홍주천주교순교성지’가 있다. 홍주성 복원과 함께 홍주성지의 순교역사도 함께 부활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홍주순교성지에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홍주성지성당의 역할과 기능이 한층 커지고 있다. 이렇듯 홍주천주교 순교성지를 비롯하여 충청도 지역에는 순교지와 교우촌 등 천주교 성지가 많은데, 특히 홍주로 불리는 내포지역의 중심지인 홍성의 경우 홍주성 감영 터를 비롯한 기획특집 | 글=한관우/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2016-09-05 10:00 한국 천주교 발상지, 홍주성과 홍주성지 성역화가 ‘답’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2> 한국 천주교 발상지, 홍주성과 홍주성지 성역화가 ‘답’ 목사 동헌 근민당 1870년 홍주성 개수 때 안회당으로 옮겨진영의 동헌 경사당 1870년 12칸 신축 순교자 신앙증거 터첫 순교자 1793년 원시장 베드로 홍주성 밖에 버려져 동사흥선대원군, 천주교 신자 혹독한 탄압, 박해 상징물 척화비 지금의 홍성으로 불리는 홍주지역은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신앙이 빠른 속도로 전파된 내포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공주 다음으로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할 정도로 교세가 번성한 곳이 바로 ‘홍주’였다. 그러다 보니 홍주지역의 순교자들이 처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장소는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홍주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홍주성은 성(城) 전체가 순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군청, 객사, 동헌 등 구석구석이 처형지로 사용됐던 곳이며, 기획특집 | 글=한관우/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2016-09-13 18:09 천주교홍주순교성지, 순교자 212명 중 4위 복자 탄생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3> 천주교홍주순교성지, 순교자 212명 중 4위 복자 탄생 홍주, 이존창에 의해 복음 전파돼 많은 천주교 신자 있던 곳천주교 신자들 심한 문초를 받아 죽거나 옥에서 굶어 죽기도홍주 순교자들 참수형보다 교수형이나 갖가지 남형으로 순교홍주의 천주교순교사는 종교의 영역을 초월한 지역사의 흐름 충청도는 순교지와 교우촌 등 천주교 성지가 많은 곳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특히 내포지역에는 중심지인 홍주의 홍주성 감영 터를 비롯한 순교성지가 많은 곳이다. 예산군 신암의 여사울, 당진 합덕의 솔뫼, 신리공소와 구 합덕성당, 신평성당, 서산 해미의 순교지, 아산 공세리성당 등 관련 유적지가 집중돼 있는 연유는 이곳이 ‘한국 천주교회사의 못자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처음에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전파되다가, 이존창에 의해 현재의 충남서부 기획특집 | 글=한관우/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2016-09-27 11:03 천주교홍주순교성지 ‘신비한 기적의 우물’을 아시나요?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4> 천주교홍주순교성지 ‘신비한 기적의 우물’을 아시나요? 홍주성 안의 옛 부터 ‘신비한 기적의 우물’ 다시 뚫려 복원홍주성 샘물, 수질검사 통해 46가지 항목 먹는 물로 ‘적합’1872년의 ‘홍주지도’에도 같은 우물 모습이 확인되고 있어홍주성 샘물에 대한 기록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에도 나와 충청남도 서북부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으며, 내포지역의 정치, 행정,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으로도 서해안 방위의 핵심 역할을 담당해 온 홍주는 관할 범위가 넓었던 만큼 순교자들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홍주부를 두어 관찰사가 주재했던 홍주는 관할 구역만 해도 북으로는 경기도 평택이남, 동으로는 경부선의 서부지역, 남으로는 금강 이북의 22개 군현에 이르렀다. 홍성읍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홍주성은 성(城)전체가 순교의 현 기획특집 | 글=한관우/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2016-10-06 20:41 천주교 홍주순교성지, 충청도의 첫 순교 터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5> 천주교 홍주순교성지, 충청도의 첫 순교 터 홍주, 충청도 최초 순교자의 치명 터·순교자 212명 신앙의 증거 터조양문 밖의 월계천 주변, 백정이었던 복자 황일광의 목이 잘린 곳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에는 모래가 쌓이는 생매장 터원시장 베드로와 사촌 형 원시보 야고보 깊은 신앙의 신자로 존경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 되는 곳에 가야산이 있다.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했는데, 바로 서해가 쑥 들어온 곳이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 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가야산 앞뒤의 열 고을은 홍주를 비롯해 결성·해미·서산·태안·덕산·예산·신창·면천·당진 등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기획특집 | 글=한관우/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2016-10-10 11:50 천주교 홍주순교성지, 80여 년간의 순교 터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6> 천주교 홍주순교성지, 80여 년간의 순교 터 홍주순교성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이 나온 곳신자들 갇혔던 감옥(증거터), 참수·생매장한 순교터, 매장터 공존박해시기 동안 수많은 순교자 등을 낸 홍주지역 최대의 순교 터홍주순교성지 순교자들 참수형보다 교수형 갖가지 남형 등 순교 홍주순교성지는 기록상으로 212명의 순교자가 나온 순교 터이다. 무명의 순교자까지 합하면 1000여명이 순교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이 나온 곳으로도 알려졌다. 그중 4명의 순교자가 복자품을 받았다. 홍주순교성지는 증거터, 순교터, 매장터 등 3곳이 함께 있는 순교성지다. 홍주순교성지에는 순교자들이 갇혔던 감옥(증거터)이 있으며, 홍주성 밖에는 신자들이 참수 당했거나 생매장당한 순교터와 매장터 등 3곳이 공존하고 있다.17 기획특집 | 글=한관우/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2016-10-17 12:21 천주교박해와 독일 상인의 남원군 묘 도굴사건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7> 천주교박해와 독일 상인의 남원군 묘 도굴사건 홍주지역 실학자들 천주교수용자 많아 문인들 중심으로 확대내포지역 정조 8년(1784) 천주교회 창설, 수많은 순교자 발생예산 간양골과 양촌 공소(公所)설정 홍주지역 천주교박해 혹독조선과 통상요구 독일 상인 오페르트, 덕산 남연군묘 도굴실패왜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썼으며, 천주교도를 박해했을까. 왜 해미읍성에서 천주교도들이 죽어가고 전국적으로 8000여명의 신자들이 순교했을까. 그것은 바로 남연군묘, 즉 대원군 아버지의 묘인 남원군 묘를 서양 사람들이 도굴한데서 기인할 수 있겠다. 대원군이 처음부터 서양 사람들을 미워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들을 박해하게 된 동기는 서양 사람들은 대원군이 쇄국정책으로 문호를 개방하려 하지 않자, 이를 타협하기 위해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원군의 시신을 도굴하여 기획특집 | 글=한관우/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2016-10-25 14:12 홍주천주교순교성지, 특징 세 가지는 무엇?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8> 홍주천주교순교성지, 특징 세 가지는 무엇? 박해 초기부터 병인박해까지 80여 년 동안 순교자 탄생해예비신자들이 모범적으로 수계하며 순교했다는 특징 간직한국천주교회 복음전파의 못자리이며 순교사의 거점 성지전국에서 두 번째 많은 순교자 탄생, 충청도의 첫 순교 터 홍주지역에 천주교의 복음이 전파된 것은 1784년 겨울 서울 수표교 인근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초기 순교자들인 홍주 응정리(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출신의 원시장(베드로)과 사촌 원시보(야고보), 홍주의 박취득(朴取得, 라우렌시오)과 황일광(黃日光, 시몬) 등의 순교 행적에서 볼 때, 홍주지역도 이미 1780~1790년대에 예산·당진·보령·면천·덕산·청양지역과 함께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한 신자들이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과적 기획특집 | 글=한관우/자료·사진=김경미 기자 | 2016-11-05 16:46 홍주순교터 6곳, 순교1터 증거터 홍주목사 동헌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9> 홍주순교터 6곳, 순교1터 증거터 홍주목사 동헌 홍주, 임진왜란·동학농민항쟁·홍주의병·천주교박해 등 역사현장안회당 뒤편 서남쪽 ‘근민당’ 천주교 박해를 한 동헌으로 유명대원군 휘호 문액 홍주성 동문인 조양문, 읍민들 반대로 보존홍주 옥 터 앞 우물, 천주교박해 때 기적을 보인 신비의 우물 서해의 관문이자 홍주목의 치소를 둘러쌓은 홍주성은 1772m에 달했으나 현재는 810여m의 성벽만 남아있다. 홍주목의 36동에 이르렀던 관아 건물이 일제에 의해 훼손되어 현재는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만 남아 있다. 홍주성이 정확히 언제 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발굴조사 결과 홍주성역사관 뒤편의 토성이 나말여초에 축성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점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홍주성은 조선 초기 왜구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석성으로 기획특집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6-11-07 13:56 신앙의 증거 장소요, 최대의 순교 터인 홍주 옥 터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10> 신앙의 증거 장소요, 최대의 순교 터인 홍주 옥 터 천주교 순교자들 홍주옥에 수감되어 꿋꿋하게 순교의 길로 나가시복 된 원시장 베드로, 방 프란치스코, 박취득 라우렌시오 순교127명 순교, 교수형과 옥사 등 113명이 옥중이나 인근에서 순교홍주관아로 체포 문초와 형벌 뒤 홍주 옥에 갇혀 있다가 처형돼조선 후기의 ‘홍주 옥’은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한 장소요, 순교를 준비하던 의미 있는 장소이며, 최대의 순교 터다. 홍주의 순교자 중 교수형 100명, 옥사 13명 등 113명이 옥중이나 그 인근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 수 있는 기록은 현재까지 없다. 홍성군청을 마주보고 바로 왼쪽에 있는 구 홍성법원 및 검찰청 자리가 있는데, 이곳이 조선시대 홍주 옥이 있던 장소다. 지난 2009년 홍 기획특집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6-11-14 15:36 홍주순교성지 3처, 증거 터 홍주진영장의 동헌 경사당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11> 홍주순교성지 3처, 증거 터 홍주진영장의 동헌 경사당 천주교순교자들 영장의 동헌 앞으로 끌려가 심한 문초와 고문천주교 전래초기 100년, 정부의 대규모 탄압받아 순교자 탄생박취득, 곤장 1400대나 맞고도 8일간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해“난 굶겨도 맞아도 죽지 않을 것이오. 목을 매면 죽을 것이오” 홍주순교성지의 3처인 ‘경사당’은 조선시대 때 홍주진영장의 동헌이었다. 천주교 순교자들은 대부분 영장의 동헌 앞으로 끌려가 심한 문초와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당했다. 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켜 결국 옥에 갇히게 되곤 했다. 신자들은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하며, 죽어도 천주를 버릴 수 없다고 강력히 신앙을 증거 한 그런 장소다.다리뼈는 부러져 갈기갈기 찢어졌고, 살점들은 형리들의 얼굴에 파편처럼 튀었으며, 부러진 등뼈는 가죽을 뚫고 밖으로 나 기획특집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6-11-18 14:08 홍주 옛 장터 저자거리, 순교자들이 수난을 겪은 곳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12> 홍주 옛 장터 저자거리, 순교자들이 수난을 겪은 곳 옛 저자거리, 순교자들 수난 겪으며 신앙 증거한 곳으로 기억돼야순교자들 저자거리 돌며 갖은 고통·조롱·수모 당했을 것으로 추정조선 후기 저자거리, 홍주성 동문인 조양문에서 북서쪽 북문까지홍주성 중심거리 진영서 동헌으로 끌려가는 신자들 이 거리 지나야 홍주지역은 한국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신앙이 빠른 속도로 전파된 곳이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공주 다음으로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한 곳이 홍주 땅이었으며, 홍주천주교순교성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홍주의 순교자들이 처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장소도 다양하다. 성지 1처로 ‘증거터 목사 동헌(홍성군청 안의 안회당과 서남쪽으로 추정되는 근민당 자리)’과 성지 2처로는 ‘순교터 홍주옥(옛 홍성지방검찰청과 법원자리, 교수형 터)’이 있으며, 성지 3처로 기획특집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6-12-01 00:57 신자들의 참혹한 순교현장 홍성·월계천 합수머리 ‘생매장터’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14> 신자들의 참혹한 순교현장 홍성·월계천 합수머리 ‘생매장터’ 홍성천과 월계천 합수머리 순교자들의 생매장터로 추정되는 곳홍주 최대 생매장 순교자 9명으로 추정, 유례없는 잔인한 형벌 자행1868년 생매장 순교자들 안장된 장소 전통적인 매장지인 숲거리천주교홍주순교성지, 충청 최초 순교자가 승천한 곳의 숭고한 넋참수 터에서 월계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홍성천이 만나는 곳에 또 모래가 쌓인 곳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생매장 터다. 길 건너 ‘홍주의사총’과 마주하고 있다. 홍주순교성지 생매장 터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내포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여도 수용할 옥사가 부족해지자 그 대응책으로 최법상(베드로)과 김조이(루치아), 김조이(마리아), 원 아나타시아 등을 생매장한 참혹한 순교의 현장이다.생매장터는 지난 2008년 3월에 이르러서야 순교성지로 기획특집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6-12-09 14:48 홍주성 북문교 인근 월계천변은 참수의 형장이었다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13> 홍주성 북문교 인근 월계천변은 참수의 형장이었다 피형자의 목을 절단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형벌이 참수형소향천·월계천의 합수머리 지점에서 처형했을 것으로 추정홍주성 북문, 월계천변 1801년 황일광 참수형을 받은 장소김대건 안드레아, 천주교 박해 당시 칼로 참수형을 집행해한국의 천주교는 200년을 훌쩍 넘기면서 모진 박해 속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신자가 목숨을 바쳤고, 이들의 순교를 기리는 성지가 전국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참수형과 생매장 순교 터가 있는 성지는 형벌의 고통이 서린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참수(斬首)란 살아있는 생명체의 목을 절단하여 동체와 두부를 분리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형을 집행하는 방법의 하나. 뜻은 ‘벨 참(斬) 머리 수(首) 형벌 형(刑)’으로 집행자 기획특집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6-12-10 09:05 한국천주교의 시작이자 순교의 땅, 홍주순교성지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15> 한국천주교의 시작이자 순교의 땅, 홍주순교성지 1000여명 순교자 배출한 홍주 땅에 2008년 ‘순교비’ 세워져홍주성지,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천주교순교자 배출한 곳천주교홍주순교성지 순교자 생매장터 십자가의 길 14처 축복홍주순교성지 순례객들을 위한 홍주성지의 성당 마련 시급해충청도 내포지역의 중심지인 홍주는 감영 터를 비롯한 순교성지가 많다. 천주교 관련 유적지가 집중돼 있는 연유는 이곳이 ‘한국 천주교회사의 못자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처음에 서울과 경기도로 전파되다가, 이존창에 의해 현재의 충남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 지역은 초기 천주교 신앙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혹한 박해의 피해지가 되기도 했다. 1839년 기해박해에서 1866년 최대, 최후의 병인박해까지 베르뇌, 페레올, 다블뤼, 오메 기획특집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6-12-15 14:31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