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기사 (5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농촌 살리는 귀농과 마을 만들기! 도시사람들의 아름다운 도전 홍성의 농부로 희망을 일구다 <20>신동리교회 오필승(신동리 이장) 목사 농촌 살리는 귀농과 마을 만들기! “교회에서는 목회를 하는 목사로, 마을에서는 이장으로, 귀농인들에게는 선배로 조언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농촌을 살리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어나가고 있네요.”올해로 귀농 14년차를 맞이하는 신동리 이장이자 신동리교회 담임목사인 오필승 목사의 말이다. 오 목사는 초대, 3대 홍성군귀농지원연구회장과 홍성군 귀농·귀촌지원센터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신동리교회에 설치된 예장 귀농귀촌 상담소를 운영 중이다.“목회활동을 잠깐 쉬는 중에 홍성으로 내려오게 됐고 교회 개척을 하게 됐습니다. 2005년 예배당을 짓고, 2006년부터 조그만 농사를 짓다보니 농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충남농업기술원에서 귀농대학 1기 교육생을 모집하는 것을 알게 기획특집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2-08 17:12 꼭 도시에서 생활할 필요가 있을까?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 홍성읍 월산리 심상용·김희주 씨 꼭 도시에서 생활할 필요가 있을까? 지하철이나 버스나 어디를 가도 늘 북적이는 도시다. 한적한 곳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아침이 되면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을 해야 하는데 밤 10시가 넘어서 겨우 사무실을 나선다. 주말도 없다. 24살에 남들보다 일찍 취업을 했지만 전혀 즐겁고 보람되는 일이 아니다. 회사 일에 치여 조금씩 지쳐갈 무렵 여자 친구가 제안했다. 우리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가서 조용하고 한적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살아보자고. 희주는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일찌감치 귀농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도시농부학교 6개월 과정도 교육받았다.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돈도 모으고 집도 샀지만 우리 세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집은커녕 돈을 모아 무언가를 이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8-04-08 09:59 바다로 나가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2> 서부면 판교리 원종회 바다로 나가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다 바다.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양식의 보고이자 삶의 터전이며 신령처럼 여기는 곳이다. 그런 바다에 삶의 도전장을 내고 어촌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으로 귀어를 한 원종회(53)씨는 지난해 9월 이동식 목조주택을 짓고 정착했다. 서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26년 동안 하던 원 씨는 처음에는 귀농을 생각했었다.“이쪽 일이 워낙 사람 관리가 힘들고 경험도 많아야 하고 신경 쓸 것도 많고 어느 날 하기가 싫더라. 처음 귀농도 생각해 봤는데 3년 이내 수확이 안 나면 힘들겠더라. 답이 안 나오더라. 내가 평소 낚시도 좋아하고 물도 좋아하니 귀어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처음에는 남해를 갔다. 귀어 상담을 하던 담당자는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8-04-15 09:46 “우리 마토가 좀 수줍음을 타요~”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3> 구항면 지정리 정규실 “우리 마토가 좀 수줍음을 타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약 세 번 정도 변화를 맞는다. 신체적으로 성숙해가면서 겪는 사춘기, 40대나 50대 즈음에 겪는 삶의 전환기, 그리고 노인이 되면서 느끼는 변화다.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그러나 짧지만 긴 인생, 그런 변화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랴.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의 실패도 경험하지 않았다. 대기업 직원으로 승승장구했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어 닥친 외환위기를 피하기는 어려웠고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49살이 되던 해 스스로에게 파업을 선언했다. 나 자신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다. 아내에게도 대놓고 말했다.“나 그대로 냅둬!” 원도 한도 없이 여행을 다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는 배신, 뒷통수, 거짓말들에서 더 이상 아파하지 말고 자연과 같이 할 수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8-04-22 09:30 귀농, 마음 단단히 먹고 오십시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4> 홍동면 홍원리 박정완 귀농, 마음 단단히 먹고 오십시오 사람은 평생 몇 개의 직업을 가질까? 어떤 이는 평생 한 가지 직종에 종사하기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매번 새로운 직업을 찾아다니기도 할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직업을 바꾸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육체를 써서 생산물을 얻어내는 농부라는 직업은 삶의 도전이다.홍동면 홍원리에 귀농한 박정완(52)씨는 귀농에 대한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귀농은 말 그대로 돌아와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귀농하는 사람들은 돌아갈 데가 없다. 아무도 없는 곳에 와서 농사를 짓는 것이니 그저 직업을 바꾼 것이다. 귀농한 사람들을 보고 전업농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귀농한 사람은 그저 귀농인이다. 마치 딱지처럼 말이다.”지난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4-29 09:02 “시골은 돈 벌러 오는 곳이 아니지요”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5> 장곡면 상송리 곽현정 “시골은 돈 벌러 오는 곳이 아니지요” 땅을 밟고, 흙을 만지고, 지천에 널린 나물을 뜯어먹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행여나 작물이 손상될까 두렁을 기웃거리는 이 모든 일이 귀농을 하면서 겪는 변화 중 하나다. 물론 모든 것이 좋지만은 않다. 쪼그리고 앉아 밭을 매니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다. 마을 어르신들의 잔소리도 들어야 한다. 당장 여유 있는 현금도 없다. 그래도…그런데 말이다, 마음만은 그지없이 편하다.37살이 되던 해 귀농을 결정했다. 여성민우회 생협에서 일하면서 생산직 출장을 자주 다녔다. 홍성도 그 지역 중 하나다. 귀농을 하게 되면 이곳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 당시 실직 상태였다. 그런데도 같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남편은 “시골은 돈 벌러 내려오는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시골은 돈 벌러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07 09:04 “우리가 여기서 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6> 장곡면 산성리 박해증 “우리가 여기서 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남 진의 ‘님과 함께’라는 노래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첫 노래가사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이다. 콘크리트 빌딩 숲에 살아가면서 철이 되면 밖으로 나가고, 여행을 다니는 이유다. 그저 관광을 다니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을 자연과 함께 하고자 도시를 떠나 시골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귀촌인들이다.그래도 귀농인보다는 조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은퇴 후 텃밭에서 생산되는 작물들로 생활하고 퇴직금을 조금씩 아끼면 충분히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사람이다. 원주민과의 심적인 갈등이 귀촌인들에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13 09:24 “가족농사만큼은 잘 지었습니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7> 홍동면 구정리 문형규, 정은락 “가족농사만큼은 잘 지었습니다!” 도시에서 직장인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며 정해진 퇴근 시간이 아닌 야근과 철야를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가려니 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살아보지만 그렇게 큰 위안이 되지는 못한다. 아이가 한참 커가는 시간에 새벽에 출근해 야심한 밤에 퇴근하니 아이와 눈 맞출 시간도 없다. 그러다 어느 광고에서 봤듯 아버지한테 하는 인사말이 “또 오세요”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셋째가 태어났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도시에서 사교육비가 감당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콘크리트가 아닌 땅에서 키우고 싶었다. 지금쯤 직업을 한 번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지도를 펼치고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서울과 가까웠으면 좋겠고, 춥지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20 09:17 “이놈의 딸기 어렵다, 어려워~”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8> 홍동면 운월리 조영식 “이놈의 딸기 어렵다, 어려워~”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 스스로 계획해 정직한 노동력으로 수확물을 만들어내는 사람, 바로 농부다. 손바닥한 만한 땅뙈기에 상추나 호박 등을 심어 나 혼자 먹고 사는 것이면 그리 큰 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콩 심어 콩 나오면 먹고, 못생긴 호박이 열리면 못생긴 대로 즐겁고 행복한 노동이다.그러나 농사가 직업이 되는 순간 몸이 힘들어지고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수익을 내서 자식들을 키워내야 하고 다가올 노후도 걱정해야 한다. 젊음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겁 없이 농업에 도전장은 내민 사람이 있다.홍동면 운월리 은방울 딸기농원을 운영하는 조영식(38)씨는 2016년 7월에 홍성에 내려왔다. 전북 완주가 고향인 조 씨가 홍성에 내려온 것은 장인어른이 홍북에서 딸기 농사를 지어서다.“사실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27 09:04 농사 아닌 다른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9> 홍동면 구정리 이지운 농사 아닌 다른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해 농사짓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해서 먹고 산다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읍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창업을 해도 되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에서 아이템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로 오고 있는 도시인들이 있다. 지난 2016년에 홍동면으로 귀촌한 이지운, 이지영 부부는 반려동물문화공간 리조트인 ㈜도기플래닛을 오픈하고 시골에 정착했다.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여행을 가면서 반려동물을 어딘가 맡겨 놓고 가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고, 데리고 가자니 선뜻 반기는 곳도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에게는 최고의 휴양지인 도기플래닛은 강아지가 수영할 수 있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3 09:03 “그저 이사를 왔을 뿐입니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0> 금마면 월암리 문성휘 “그저 이사를 왔을 뿐입니다”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에게는 로망이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삼아 멋진 집을 짓고 살고 싶은 꿈 말이다. 물론 풍경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뻐꾸기가 울고 밤에는 소쩍새가 ‘솟적다’라고 울며 올해의 풍년을 알린다. 사계절을 지나며 온갖 꽃들을 지천에서 보고 느끼며, 자연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다. 내가 무엇을 해 준 것도 없는데 자연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혜택을 준다.지난 2012년 금마면 월암리에 귀농한 문성휘(58)씨는 “아침에 일어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스팔트 위에서 태어난 문 씨는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45살에 명예퇴직을 했다. 아내 복명순 씨와는 상의도 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내려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7년을 아내에게 졸랐다. 물론 그 때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9 09:16 스스로 움직여 할 수 있는 농사 큰 매력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1> 홍동면 팔괘리 박병용 스스로 움직여 할 수 있는 농사 큰 매력 청년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을 뜻하며, 20대 정도의 나이대에 속하는 남성과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청년의 범위가 확대돼 39세까지도 청년의 범위에 들어간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만 34세로 규정하며, 각 지자체의 청년귀농·귀촌지원정책 등에서는 39세로 규정된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백세시대를 맞이해 청년의 범위가 확대된 것도 있고 특히 시골에서 39세면 그야말로 젊은이다.지난해 1월 홍동면 팔괘리에 둥지를 틀고 젊은 농부가 되기 위한 수고로운 과정을 겪고 있는 박병용(38)씨는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으로 유기농 밭을 임대한다는 광고를 봤다. 그 길로 홍동면에 내려와 밭을 보고 내친김에 마을 어르신에게 근처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18 09:12 삶의 다양한 방식을 알게 해준 귀농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2> 홍동면 금평리 이상철 삶의 다양한 방식을 알게 해준 귀농 지금도 기억한다. 2012년 5월 5일 TV에서 귀농 특집이 방송되고 있었다. 물론 TV에서는 귀농의 좋은 모습만을 보여줬다. 그래도 귀농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는 계기가 됐다. 2012년 말, 정확히는 2013년에 홍동면 금평리에 터전을 잡은 이상철(43)씨는 지금도 그 때를 기억한다.“귀농을 먼저 생각한 것은 아내다. 결혼 10주년이 되던 해 아내가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다. 결혼을 한 후 집이 커지고 자가용이 좋아진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밤 10시였다.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 된 아이가 어느 날 그런 말을 했다. “사실 그 때 죽고 싶었다.”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23 09:11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은 것이 후회돼요”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3> 홍동면 구정리 김성헌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은 것이 후회돼요”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도시인들이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산다면 어르신들이 하는 말이 있다. “뭐 할라고 와? 할거나 있깐?” 그렇다. 이미 현지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틈새를 아무리 파고들고 요리조리 생각해보고 고심해도 별반 찾아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도시인들은 시골로 온다. 그냥 농사 짓는 게 좋아서? 아님 도시에서 사는 것이 싫어서?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내 안에 있다.지난해 1월 김성헌(51)씨는 가족과 함께 홍동면으로 내려왔다. 부모님 고향이 이북이기에 김 씨는 어릴 적 늘 시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는 아이들에게 시골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생각을 조금씩 실천해갔다.운영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02 09:01 함께 어울려 매일매일 즐겁게 생활합니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4> 장곡면 상송리 최 익 함께 어울려 매일매일 즐겁게 생활합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당연히 혼자는 살아갈 수 없고 누군가와는 어울려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 어울려 살아간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가족끼리도 모이면 언쟁을 하는 판에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정을 나누고 마음을 의지하며 살기는 많은 시간과 서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간들이 첩첩이 쌓이는 것이 한 지역에 정착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지난 2012년 장곡면 상송리로 귀농한 최 익 씨는 현재 아내와 함께 두리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에서 개인 사업을 운영하던 최 씨는 운전면허증 갱신을 하던 중 한쪽 시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포도막염이었다. 일종의 염증인데 심하면 실명의 위험도 있는 질병이다. 과로와 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하루 3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던 최 씨는 큰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09 09:15 “가난해도 마음은 편합니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5> 장곡면 도산리 이정훈 “가난해도 마음은 편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탈 서울을 꿈꾸고 있다. 도시에서 맞춰진 생활대로 정해진 월급을 따박따박 받으며 자녀 교육비, 주거비, 생활비 등에 쪼개 쓰다 보면 손에 남는 것이 없다. 빚만 안 생겨도 다행이다. 그렇게 생활에 쫓겨 살다보면 어느새 마흔이 되고 오십이 된다. 그제야 ‘이게 인생이란 말인가’하며 후회하고 다른 것에 눈을 돌려보지만 그 때는 이미 세월이라는 장벽 앞에 부딪친다.지금은 1970년대나 1980년대의 산업 역군이 필요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사람들은 돈이라는 경제적 부를 꿈꾸기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보다 많은 다양성에 눈을 돌린다. 그 다양성 중에 귀농과 귀촌이라는 삶의 방식이 있다. 지난 2004년 귀농한 이정훈(46)씨는 인천에서 자영업을 했다. 자녀가 4남매가 되면서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15 09:13 하늘의 뜻으로 만난 선녀와 나무꾼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6> 갈산면 운곡리 신영민, 박성억 하늘의 뜻으로 만난 선녀와 나무꾼 선녀와 나무꾼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나무꾼과 짝이 되었다가 영원히 이별을 한다는 설화다. 그러나 영원히 이별하지 않고 서로가 의지하고 기대며 보호막이 되어주며 살아가는 선녀와 나무꾼이 있다. 갈산면 운곡리에 사는 신영민, 박성억 씨는 올해로 9년째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천에서 거주하던 신 씨가 홍성에 내려온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길을 지나다가 부동산에 붙은 광고를 봤는데 서울과 근거리고, 충남도청 예정지라는 것을 보고 뭔가에 홀리듯이 내려왔다. 처음에는 남편 은퇴 후 자급자족하며 살자는 마음으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그 때가 2001년이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부부는 밭에 이런저런 작물을 모두 심다 보니 23가지나 심게 됐다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22 09:08 농사보다 농업이 더 재미있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7> 금마면 봉서리 이을숙 농사보다 농업이 더 재미있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살아서인지 자연친화적인 성격의 아이는 두 달 이상 시골에 가지 않으면 몸이 아프고 우울해했다. 어느 날 고구마 밭에 들어간 아이는 오전 9시에 들어가 오후 5시까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흙에 얼굴을 대보고 공기에서 물방울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물었다.“엄마, 시골은 건희가 착한 일을 많이 안 해서 못 오는 거야?”“아니야, 우리도 내려와 살 수 있어.”“그럼 언제 가?”“건희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이후 아이는 단 한 번도 시골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3학년이 된 그 해 3월 2일 건희가 물었다. “엄마, 우리 몇 월에 가?” 그리고 4월 홍성에 내려왔다. 아무 대책 없이 내려온 도시여자, 이을숙 씨는 이제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7-29 09:13 귀촌은 더불어 살며 나누는 행복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8> 장곡면 도산리 이현준 귀촌은 더불어 살며 나누는 행복 도시 빌딩 숲 안 작은 오피스텔, 현준은 3일째 휴대전화와 컴퓨터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온라인 판매가 직업인 그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는 것은 경제적 포기와 유통망의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식사는 배달 음식으로 때우고 단 한 번도 바깥출입을 하지 못했고, 그 옆을 하늘이만이 지켜줄 뿐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덩치가 산 만한 그를 생각한다면 어지럼증은 어울리지 않는 적신호였다. 덩치만큼 겁이 덜컥 난 현준은 병원에 갔다. 의사는 당연히 협심증을 의심했고, 온갖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병실이 나기를 기다리며 응급실에 3일을 있었다. 응급실은 전쟁터였다. 심폐소생술을 하며 급하게 들어오는 환자, 피를 흘리며 소리를 지르는 환자, 방금 들어왔는데 얼굴에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8-03 09:13 아이 키우는데 최적의 환경은 시골이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19> 장곡면 지정리 전미영 아이 키우는데 최적의 환경은 시골이다 호주의 간호사 브로니웨어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공통된 후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첫째는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인생이 아닌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것. 둘째는 그렇게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셋째는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 넷째는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지 못했다는 것. 다섯째는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그것이다. 저자는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고, 가진 것보다 더 원하면 가난하다’고 단언한다. 당신은 무엇을 후회하는가. 나는 다섯 번째다. 사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살아본 적이 없다.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굳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8-13 09:15 처음처음이전이전123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