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간다진보초, ‘세계 최대 헌책방거리’명성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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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간다진보초, ‘세계 최대 헌책방거리’명성 유지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11.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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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17〉


일본의 도쿄 간다진보초에는 2㎞에 걸쳐 고서점가와 헌책방이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진보초는 온전히 살아남은 서점가
오늘날 ‘세계 최대의 헌책방거리’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세계적 축제로 거듭난 진보초 고서축제 올해 60돌, 100만권 거리로


책 향기에 빠져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오래된 책과 헌책방은 그래서 개념이 다르다. 쉽게 말하면 오래된 책은 비싼 책이 많고 헌책이란 교과서 같은 일반 단행본류를 떠 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에는 이 둘을 다 겸비한 오래된 서점가가 있는데 간다진보쵸(神田神保町)에 있는 고서점가가 그곳이다. 흔히 간다(神田) 서점가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하루 종일 책 구경을 하며 지내도 질리지 않는 곳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이라도 싼 책은 10엔짜리부터 좀 비싸다고 해도 1000엔 정도면 사고 싶었던 책을 손에 쥘 수 있어 부담이 적다. 책이란 비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을 만났을 때 기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청계천일대에 헌책방가가 있긴 하나 일본 간다 진보초의 고서적·헌책방 거리와는 좀 다르다. 우리의 청계천은 교과서나 철지난 소설, 기타류가 많고 오히려 값나가는 고서적은 인사동에 몰려있는 편이다. 일본의 고서점가는 이 둘이 서로 섞여 있는 느낌이다. 간다 진보초의 고서점가에는 300~400년 된 고서들과 헌책들도 많은데, 그 값이란 몇 십만 엔에서부터 몇 백만 엔씩 하는 것도 있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때도 많다.

일본의 유명한 고서적과 헌책 거리인 ‘간다지역’은 명치10년(1880) 때부터 이 지역 일대에 들어선 메이지대학, 중앙대학, 일본대학, 전수대학의 영향이 크며 그 역사는 130여 년에 이른다. 고서점가 하면 왠지 옛 시절의 향수어린 추억의 거리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간다의 고서적가는 문학, 철학, 사회과학, 연극. 자연과학, 예술, 양서(洋書), 문고본(文庫本) 등 전문분야로 나뉘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간다 진보초에는 책방이 모두 180여 개가 있는데, 이 가운데 헌책방은 150여 곳에 이르며, 고서점만도 110개가 있다는 설명이다.


■ 100년 세월의 세계 최대 헌책방거리

일본 진보초의 고서점과 헌책방에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고서와 헌책 등에 각각 책값을 기록해 놓고 있다.
일본 진보초의 고서점과 헌책방에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고서와 헌책 등에 각각 책값을 기록해 놓고 있다.

일본의 도쿄 중심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간다진보초(神田神保町)에는 약 2㎞에 걸쳐 고서점가와 헌책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헌책만 다루는 서점이 무려 150여 곳에 달한다. 신간을 파는 서점을 합치면 그 수는 180~200여 곳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이 지역에 헌책방들이 들어서게 된 배경을 찾다 보면, 메이지(明治)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부터의 일이다. 당시 일본은 근대 신학문을 배우고자 신식 교육기관이 만들어졌다. 도쿄에는 메이지대학, 도쿄대학 등이 차례로 세워지면서 대학촌이 만들어졌다. 자연스레 책의 수요도 많아졌다. 대학 근처에 서점과 출판사, 인쇄소가 들어서면서 진보초 중심으로 헌책방도 하나둘씩 문을 열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생겨난 헌책방은 100여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 배경을 따지면 전쟁의 피해를 비켜간 덕분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쿄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초토화됐다. 하지만 진보초 부근만은 온전했다고 한다. 이렇게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서점가는 오늘날 ‘세계 최대 헌책방거리’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그 명성을 좇아 찾은 진보초 거리는 헌책방이라면 으레 떠올리는 낡고 퇴색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책들로 빼곡히 둘러싸인 풍경은 우리나라의 헌책방과 다를 바 없지만 오래된 건물은 고색 짙은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화려한 도심 가운데 그윽한 묵향이 깃든 느낌이다.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각각 특정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헌책방마다 전문 주제에 맞는 책들로 채워졌다. 크게 나누면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으로 쪼갤 수 있지만 그 분야가 너무도 세분화, 전문화돼 있다. 문학 가운데도 영문학, 중국문학만 따로 취급하거나 고지도, 미술, 사진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도 있다.

헌책방 거리는 학술적이고, 철학적이며 예술적인 책에서부터 대중적인 잡지, 만화까지 아우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 오면 본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전문서점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건물의 벽면에 설치된 책꽂이에서 고객들이 책을 살펴보는 모습.
건물의 벽면에 설치된 책꽂이에서 고객들이 책을 살펴보는 모습.


■ 헌책방 주인들의 힘으로 지킨 오늘
헌책방들이 오랜 기간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헌책방 주인들의 노력이 컸다고 전한다. 세계적 축제로 거듭난 진보초 고서축제도 그러한 노력과 맥을 같이한다. 고서축제는 올해도 10월 25일부터 일주일 동안 이어져 60년째를 맞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대체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매년 축제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 기간에는 100만 권 정도의 헌책이 특별히 할인된 가격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고서축제가 행사의 포문을 열면, 신간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과 출판사가 축제 말미에 합류해 그야말로 헌책과 새 책 할 것 없이 ‘책의 축제’가 펼쳐진다. 축제는 헌책 판매뿐 아니라 작가와 만남과 강좌, 이벤트 등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진다. 축제 기간에는 헌책을 사고팔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일회성 홍보나 단순한 판매행사에서 벗어난 고서축제는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고서축제는 전적으로 헌책방 주인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그 중심에는 진보초 헌책방거리 상인들을 주축으로 결성한 ‘간다고서연맹’이 있다. 축제는 헌책방 주인들 스스로 축제를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한다. 관할청인 도쿄 지요다구의 지원을 일부 받기는 하지만 비율이 높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지요다구 또한 행사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적용했다. 연맹은 매년 발행하는 가이드북 판매비용과 광고수익 그리고 자체 회비로 부족한 축제 비용을 충당한다. 헌책방 주인들이 힘을 합쳐 상생과 공유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공동브랜드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독서량이 세계적으로도 높은 일본이라 할지라도 역시 시대 변화에 따른 독서량이 떨어지는 등 책 문화가 예전 같지는 않다고 설명한다. 대형 중고서점 프랜차이즈 북오프(Book-off) 영향과 스마트 기기에 밀려 독서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도 위협적인 건 인터넷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과 같이 인터넷으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종이로 된 책을 찾지 않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일본 헌책방은 이러한 어려움을 인터넷으로 돌파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고서적협동조합을 조직해 원활한 헌책 수집과 운영 체계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브랜드화된 진보초 헌책방 이외에 자칫 시류에 휩쓸릴 지역의 헌책방을 살리려면 새로운 판매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1996년 조합이 만든 인터넷 판매 사이트다. 현재 조합에 등록된 회원 중 인터넷 사용을 안 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보초 내 도쿄고서협동조합 건물에서 열리는 헌책시장도 상인들 스스로 마련했다. 조합에 가입된 헌책방 상인들은 필요한 책을 도매로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해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고 한다. 특정 날을 지정해 일반인에게 개방할 만큼 활성화돼 있다는 설명이다.

인터넷 판매와 헌책시장은 헌책방을 유지하는 토대를 마련했고, 서점이 줄어드는 속도를 둔화시켰다. 헌책방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새로 헌책방을 하겠다는 사람이 생겨나는 이유다. 헌책방에 닥친 위기를 상인들 자력으로 타개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도고서적조합 홍보담당은 “헌책은 역사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옛 사전 같은 경우 언어의 변천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료나 책이 없어지면 옛것을 알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지는 거다. 어떤 특정 분야에서 개인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라고 생각한다”며 “헌책방을 살리려면 어느 정도 관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그게 절대적일 수는 없다. 헌책방에는 책방 주인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다. 그러한 특성을 살리려면 상인들 스스로 생존방식을 연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보초 헌책방에서 고객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진보초 헌책방에서 고객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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