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과 한조각 구름의 스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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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 한조각 구름의 스러짐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11.05 08: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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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이던 하얀 화염(火焰)과 지루한 장마를 이겨낸 나뭇잎들은 스스로 붉게 물들어 지상으로 내려앉는다. 낙엽은 생명의 에너지가 뿌리에서 줄기로, 잎으로 다시 뿌리로 순환하고 있음을 알리는 메타포다. 에너지의 회전은 모든 생명체에서 발생하지만, 같은 개체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떨어지는 나뭇잎에 쓸쓸함과 무상함이 묻어 있다.

그러나 끝이 있기에 생명도 의미가 있다. 죽음이 없는 일상이란 매일 매일이 그렇고 그래서 가치 있는 삶이되기 어렵다. 오히려 죽음이 삶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생이 짧은 하루살이의  일생은 얼마나 치열한가. 우주의 긴 역사에서 보면 인간의 삶도 순간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인간은 영적으로 죽지 않는 영생을 꿈꿔왔고, 육체적으로도 죽지 않으려 불로초를 찾아 나섰지만 그것을 구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인간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몸에 좋다는 갖은 행위와 약물, 장기이식과 같은 과학, 의학을 발전시켜 왔지만, 백년도 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나고 만다. 죽음 앞에 겸허해 질 수밖에 없다.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고 다니지만, 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처량한 배우’와 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 말했다. 연극이 끝나면 배우의 역할이 괜찮았는지 어땠는지 촌평이 있게 마련이다. 며칠 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에도 공과가 있겠지만, 세계와 경쟁해 우리도 1등을 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혁신을 통해 초일류가 돼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도 그는 남겼다. 그러나 돈 많은 그가 무대에서 황급히 내려오는 것을 보면 아직 의학이 생명을 연장하기에는 거리가 먼가 보다.

낙엽은 삶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졌다. 죽은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내가 억울하게 죽었으니 나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말을 아들은 듣는다. 그러나 햄릿은 아버지를 독살한 사람이 작은 아버지임을 확신하고도 복수를 머뭇거린다. 복수를 해야 할 순간에 많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간다. 기도를 하고 있는 작은 아버지를 지금 죽인다는 것은 오히려 그를 천당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원수가 천당에 갈 것이니 지금 죽일 수 없다는 그 시대의 논리다. 이런 머뭇거리는 인간형을 ‘햄릿형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햄릿이 우유부단한 면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재상(宰相) 폴로니우스를 단칼에 살해하는 독한 기질과 레어티즈와 칼싸움을 벌이는 용맹함도 지녔다. 단지 복수를 지연하는 문제에 시선을 고정하면 이 연극이 함의하고 있는 깊은 의미를 놓치기 쉽다. 햄릿은 연극의 뒷부분에서 죽음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애인 오필리어를 묻으려고 무덤을 파는 산역(山役)꾼들이 가볍게 던지는 농담을 통해서 삶이 무엇인지를 돌아다보고 세상의 섭리를 알게 된다. 한때 잘 나가던 정치인, 변호사, 익살꾼 요릭의 해골을 산역꾼들은 두들겨 패며 그들에게 조롱을 해댄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며, 세계를 호령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흙이 되어 맥주병 마개가 될 수 있음을 햄릿은 알아차린다. 

햄릿은 서산대사가 입적하기 전 읊었다는 “생야일편부운기 生也一片浮雲起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사야일편부운멸 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을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TV에선 마스크를 쓴 국회의원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비춰진 낙엽이 창밖에 지고 있었다.

 

김상구<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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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2020-11-05 19:50:14
햄릿에 대한 영화를 보고 영어를 공부했던 기억이 아직은 생생하게 남아있어 그때의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봤습니다.
교수님과 같이 했던 너무도 소중했던 그 시간에 내가 초대되어 즐거운 추억속에 잠시 머물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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