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100주년의 감회를 되새긴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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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대첩100주년의 감회를 되새긴다③
  • 이상선 <전 홍성군수>
  • 승인 2020.12.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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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장군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애환도 많았으나 그런대로 추진이 잘됐다. 육군본부 군사실장은 찾아와 오늘 행사에는 국방부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이 왔어야할 행사였다며 미안해하면서 돌아갔다. 

그런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갑자기 1년간의 군수 장기교육을 가게 됐다. 초임군수로서 17개 시장군수 중 내 차례가 될 수 없는데, 어떤 자의 간계로 떠나야 하는 처지가 돼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자세한 내막은 밝히지 않고 묻어뒀다. 

노태우 대통령의 영부인 안동김씨 김옥숙 여사의 협조로 백야장군 사업비 내무부특별교부세 40억 원이 결재가 됐는데, 교육을 가게 돼 허사가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교육을 떠났다. 나는 교육도중 어느 날 안동김씨 김경한 종친회장 국회 행정위원회 상임위원장 김덕규(무주 진안 장수 출신) 전옥진 등 10여명을 서울 인사동 한정식 집에 초청해 대통령의 결재를 득한 내무부특별교부세 40억 원을 받아내기 위한 좌담회를 개최한바 김덕규 위원장이 내가 앞장서 얘기할테니 군수는 교육이나 잘 받으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당일 내무부장관을 만나 우선 5억 원을 지원한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고향사람도 아닌 분이 적극 협조해 준 사례로 감사드렸다. 그 뒤로는 더 이상 가져오지 못하고 말았다니 한없이 아쉬웠던 참사였다. 

1년의 세월이 지나 교육이 끝나고 새로운 부임지를 선택하라는 도지사의 전화를 받고 ‘사당건립이 남았는데’라고 쫓겨났던 홍성으로 다시 부임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당을 준공하고 제향을 올릴 때 어느 사당의 영정보다도 크게 제작된 장군의 영정을 보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동안 누적된 감회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다. 당일 준공식에 참가하신 외빈들에게는 중식으로 생가에 국밥을 준비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식사하는 곳에 가보니 주민들이 먼저 식사를 하는 통에 장군의아들 후계자라고 하는 조일환 씨가 제공한 기념타올 한 장 씩 드리고 적작 외지 손님들에게는 식사대접을 못하는 결례를 범했다. 당일 식사를 한 주민들에게 제공된 식사는 선거법 위반이라 해 홍성을 떠난 후에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장군의 생가복원과 사당준공은 자랑스러운 홍성의 역사로써 영원할 것이다. 

해마다 열리는 제향일에는 곡 참관해 향을 올리려 했었다. 그런데 2002년 홍성을 떠난 지 18년이 지나도록 제향일에 초청되지 않아 불참한 것이 항상 송구스러웠다. 올해는 역사에 빛나는 청산리대첩 100주년이 되니 휠체어를 타고 들어서라도 백야사 계단을 올라가 향을 올리고 참배를 드리려했으나 제향일에 초청되지 못해 평소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좁은 소견으로는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빠질 수가 없는데 하면서도 제향일을 모르고 지나쳤다.

아무런 흔적도 없는 곳에 생가를 복원했고 사당을 세웠으니 남다른 감회가 있는 것이다. 제향에 빠질 수 없는 김을동, 홍문표 의원 등 주최 측에도 분노를 느낄 만큼 섭섭함을 금할 수 없기에 하고 싶은 막말을 참아내며 나의 깊은 감회를 드린다. 누가 잘못일지는 장군(將軍)께서 벌해 주시리라 믿고 홍성의 발전과 군민 모두의 건강을 빌면서 감회를 드린다.

<끝>

이상선 <전 홍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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