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풍상〉
상태바
〈만고풍상〉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1.05.11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9〉

눈이 많이 내리는 2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르신 두 분이 그림 그리는 방에 들어오셨습니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려 할아버지인지 할머니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오셔서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들은 그 두 분을 아셨겠지만 나는 처음이었습니다. 두 분 중 한 분의 손에는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습니다. 스케치북을 손에 든 분이 그림을 그리는 상 앞에 앉고 한 분은 창가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상 앞에 앉으신 분께 성함을 여쭈었습니다. 창가에 앉은 분이 후후 웃으시며 “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 다시 여쭙자 “가만석!”하고 창가에 앉으신 분이 조금 더 큰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가만있으라고?!” 속으로 뇌이다가 얼른 알아차렸습니다. 가자 성에 만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였습니다. 두 분은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고 할아버지는 또 찬찬하기로 동내에서 소문이 짜한 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스케치북에는 이미 여러 장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처음 그려보는 그림이었을 텐데도 종이에 가득 큼직큼직하게 그리셨고 대상물마다 명칭도 꼼꼼하게 적어 놓으셨습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잠을 안자고 그리더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장의 그림 중에 흐드러지게 핀 꽃그림이 있어 말씀드렸습니다. “꽃을 참 탐스럽게 그리셨네요!” 할아버지 대답이 뜻밖이었습니다. “만고풍상 다 겪어서 그려!” 만고풍상이라! 그 말씀이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