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成玉 名唱(김성옥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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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成玉 名唱(김성옥 명창)
  •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교수>
  • 승인 2021.09.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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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中鶴膝玉氷姿
慢調高雅步步遲
鶴膝風嚴人到少
門前楊柳碧絲絲

꿈속에서 학을 보았네
빙옥(氷玉) 같은 모습
길쭉하게 잘 빠진 다리
고아한 진양조 가락(慢調)에
걸음걸이 느긋도 하다

학슬풍(鶴膝風)이 심해져
찾는 사람 드문데
문앞의 버드나무는
푸른 실이 늘어졌구나

[해설]
김성옥 명창은 세칭 ‘중고제 판소리’의 선구자다. 지금의 논산시 강경읍 북동 마을에서 태어나 뒤에 이웃 고을인 전라도 여산(礪山)으로 옮겨가 살았다. 생몰년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가왕(歌王) 송흥록 손윗누이의 남편이라는 점, 30여 살에 별세한 점을 들어 1795년경에 태어나 1830년경까지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증손자 김세준(金世俊: 1894∼1960?)에 의하면, 김성옥은 14세 때 계룡산 토굴에 들어간 뒤 10여 년간 독공을 했으며, 마침내 득음한 뒤 24세 때 하산했다고 한다. 금세 명창으로 이름이 났으나 그것도 잠시, 심한 학슬풍(鶴膝風)에 걸려 앉은뱅이가 다 됐다.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무리하게 수련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병석에서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판소리를 연구하는 한편 아들 정근(定根: 正根)에게 소리를 전수했다. 판소리에서 가장 느린가락인 진양조(盡陽調)는 그가 개발한 것으로, 이후 처남 송흥록에 의해 완성의 경지에 들었다. 송흥록은 진양조에 대해 “가계(歌界)의 일대 발견”이라며 칭송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그의 또다른 처남 송광록은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진양조로 〈범피중류〉를 짜서 마침내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의 소리는 집안에서는 아들 김정근, 손자 김창룡·김창진, 증손자 김세준, 현손녀 김차돈으로 이어졌고, 다른 한 계통은 김정근의 제자 이동백·황호통·최승학 명창 등이 있었다. 

위 시에서 문학적 포인트는 ‘학슬’이다. 학의 다리, 학의 걸음걸이는 우아하다. 그러나 사람에게 학다리병(각기병)은 무서운 것이다. 다리가 길쭉한 학의 우아한 학의 걸음걸이는 진양조 가락과 잘 맞다. 그런데 진양조를 개발한 김성옥이 학다리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그의 삶과 소리를 ‘학슬’과 연결지어 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30대 이른 나이에 갔지만 예술혼은 꺼지지 않고 이어졌다. 애이불비(哀而不悲)라 하겠다.

자료제공=결성향교 선비문화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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