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지역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새로운 인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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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역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새로운 인식 〈2〉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21.12.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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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점진적으로 진행됐고, 어떤 나라에서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근대 사회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동양 사회를 바라볼 때 굳이 서구적 의식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동양 아시아적인 것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이런 생각은 서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서구의 시장경제는 제국주의 단계를 거치며 이미 자기 시장이 포화돼 국내를 넘어 해외에까지 확대돼 있다. 이제는 아시아 혹은 동양 사회를 과거와 같이 ‘그들을 의해서만’ 존재하는 세계, 그들의 세계 ‘밖에’ 존재하는 세계, ‘의식이 없는’ 세계, ‘굳이 가치의 법칙을 적용하여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로 생각해서는 더 이상 자신들의 사회(자본주의적) 구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아시아의 세계가 이미 자기들의 세계(시장) 안에 포함돼 있고, 포함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세계 상에는 새로운 세계 의식, 새로운 사상 의식의 출현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됐는데, 이것은 서구인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것이 돼버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거에는 어떠했다 해도 현재로서는, 서구 사회와 아시아 사회를 특수한 형태로 포함하는 보다 ‘보편적인 세계 사회 의식’을 생각해, 서구와 동양을 상호(간) 대등한 위치에서 파악하는 시도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는데, 당연히 이 세계 의식에는 동양의 전근대적 사회 의식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 세계는 근대적 의식과 함께 우리가 극복해야 할 세계이기 때문이다. 또 그 세계는 서구의 의식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동양의 전근대적 의식의 ‘의식으로서의 타당성’을 수용하는 순간, 이제까지 서구인[인류]들이 이룩해 온 문화 사상 의식 전체의 의미는 모두 부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현대인들 가운데 그 누구도 과거로 되돌아가서 빈곤과 차별로 고통받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전적으로 서구적 의식도 아니며 전적으로 동양적 의식도 아닌 혹은 전적으로 두 세계를 의식적으로 포괄하는 세계 의식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해 있다.

‘제노사이드’의 실상과 실체 규명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의식의 필요성을 이 사건에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를 비난하면 나도 비난받을 수 있다. 지식, 가치관, 신념은 사회이든 국가이든 누구나 다를 수 있다. 자기 세계를 ‘문명의 세계’, ‘신세계’, ‘역사적 세계’라 하고, 그 밖의 세계를 ‘미개한 세계’, ‘낡은 세계’, ‘비역사적 세계’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조화로운 세계 사회를 구성하는 첩경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지식, 가치관,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강자가 약자를 핍박한 과정을 수없이 보아 왔다. 최근에도 북한, 중국,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을 ‘악의 축’이라 부르며 그에 동참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서구 사회의 강요에 힘들어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단’시 하며 비판하는 정부·학계·언론의 문화의식 몰이해를 매일 같이 경험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의 국내 국제 간 갈등과 분쟁을 타개하려면, 다양한 생각들을 인정해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편적 세계의식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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