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를 살리고 유학을 현양하는 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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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를 살리고 유학을 현양하는 길〈2〉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22.05.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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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때로 공동체[不法]에 맞서 주체적으로 대응[抵抗]하는 것을 옳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국가에 공권력이 있다면 개인에게는 저항권이 있다는 논리이다. 정치의 내용도 변화되었다. 과거에는 도의 구현을 정치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출사(出仕)를 선비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덕으로 여겼다. 어찌 되었든 출사를 해야 자신의 의로운 뜻을 펼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치를 개인의 자유의 실현을 보장하는 도구 내지 수단이라고 여긴다. 정치에 참여하는 자가 굳이 도덕적일 이유도 없다. 부(富)를 고르게 분배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보다 더 잘 보장하고 실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괜찮다고 한다. 도덕적인 사람만이 정치를 담당할 수 있다는 사고가 지양되고, 재주와 기술 혹은 지식이 뛰어난 이가 정치를 담당해야 한다는 사고가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사고의 이면에는 근대 사회의 분업 이론과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세계 해석 이론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나타난 이러한 변화는 특히 가족[clan] 윤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사람다움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해에는 공동체를 일사불란하게 운영하고자 했던 전근대 사회의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공동체[가족]가 해체되면 개인의 행복과 안위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연장자와 연소자의 관계가 상호주의적ㆍ교호적 관계로 이해되고 있다. 이른바 주고 받는 GAT(give and take)의 관계로 정착해 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동체[가족]의 안위를 걱정하여 가장(家長)을 맨 위에 놓고 가솔(家率)들을 그 아래에 질서지우는 것이 도덕의 패턴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가족 구성원의 자유 실현을 고려한 위에 가족 공동체의 성립과 운용이 논해지고 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장년과 소년의 관계를 이른바 ‘천륜(天倫)’으로 이해하는 사고는 고리타분한 사고로서 통용되기 어려운 가치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에 대신하여 강조되는 것이 천부인권과 사회계약설이라는 사회정치이론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향교에서는 어떠한 교육을 시행해야 할까. 유학의 목적이 인간다움의 구현에 있다면, 오늘날의 향교 교육은 ‘종속적’ 윤리관에 대해 ‘수평적’ 윤리관을 권하는 방향으로 변화돼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다움 곧 유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향교에는 예로부터 두 가지의 교육이 있어 왔다. 바로 ‘군자(君子)의 학(學)’과 ‘육예(六藝)의 연마(硏磨)’이다. 육예란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라 불리는 6가지 기예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재주와 기술 내지 재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관혼상제에 필요한 의식(禮), 의전에 필요한 음악 및 악기의 연주(樂), 전투 기술(射), 말의 조련과 마차의 관리(御), 문서 작성(書), 조세 및 부세의 출납 관리(數)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이것은 재주와 기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완성된 인격을 뜻하는 군자(君子)가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였는데, 이를 위해 설치한 교육과정이 ‘경전학습’ 곧 ‘학(學)’이다.(공자가 15세 무렵에 뜻을 두었다는 학) 강학(講學)과 제술(製述)을 교과과정으로 개설하는 한편으로, 습자(習字)와 체육, 기예를 함께 연마하도록 교과목을 편성한 것은 이에 기인한다.

과거에는 군자의 학을 으뜸으로 하였기 때문에, 육예(六藝)에 속하는 것은 군자의 학에 대해 소인(小人)의 술(術)로 천시됐다. 그래서 학동들도 전자를 연마하는 데 온 힘을 다하였고, 후자는 계절에 따라 혹은 여유가 있을 때 잠깐 잠깐 연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위상이 변하여,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후자는 바로 자본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전자는 궁핍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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