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삶을 통해 산업화 사회 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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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삶을 통해 산업화 사회 진단하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2.15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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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공단 노동자 출신, 이소리 시집
〈어머니, 누가 저 흔들리는 강물을 잠재웁니까〉

1978년부터 1985년까지 창원공단에서 현장노동자로 노동한 이소리 시인이 1994년 6월 세 번째 시집 <어머니, 누가 저 흔들리는 강물을 잠재웁니까>를 펴냈다. 출판사 ‘푸른문화’가 기획해서 시리즈로 출간한 ‘이 시대 젊은 시인들’ 시선 첫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이에 앞서 1990년 출판사 ‘황토’에서 펴낸 첫 시집 <노동의 불꽃으로>와, 이듬해 출판사 ‘한길사’에서 펴낸 두 번째 시집 <홀로 빛나는 눈동자>를 통해 산업화로 인한 공단조성으로 수용당해 피폐해진 고향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 노동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현장노동자의 애환 등 정서를 다양하게 담아내어 주목받았다.

“견디겠어요/월말만 가까워오면/연탄 떨어져/쌀 떨어져/이대로는 너무 억울해서/옹골차게 견디겠어요/……/어둑한 거리에는/창백한 쌀눈이 자꾸 내리고/우리는 쌀눈덩이 같은 수제비를 먹는다/오랜만의 외식인데 하면서도/ 활짝 웃어주는 아내의 마음은/ 군데군데 하얗게 빛을 발하며/허물을 덮는/저 하이얀 쌀눈처럼 아름답다”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연작시 ‘공단 보릿고개-월말’ 중 일부다. 이처럼 시인은 자신이 공장노동자 생활에서 몸으로 직접 격은 체험에서 파생된 정서를 시로 표출했다.

시집 <어머니, 누가 저 흔들리는 강물을 잠재웁니까>는 시인이 책머리 글에서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시 한 편 한 편에 어머니 삶의 1년 무게를 싣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안의 가족사를 찬찬히 살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땅의 어머니이며 우리 가족사는 곧 이 땅의 역사이니까요”라고 밝혔듯, 평생 농사일 노동으로 땅을 일궈 어렵사리 자식들을 키워 낸 그 귀한 논밭을 산업화로 생각지도 않게 잃은, 자식들을 공장노동자로 보내야만 하는 이 땅의 어머니를 담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병들어 일찍 세상을 등진 어머니의 삶을 통해 산업화로 질주하는 당시 사회를 애처롭게, 또는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어머니의 환생을 기리는 슬픈 노래’라는 제목의 시집 해설에서 “시집은 이름도 흔적도 남긴 것 없이 소박하게 세상을 살다 간 ‘어느 민중의 약전’이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결코 잃어서는 안 될 존재의 깨달음을 맛보게 해주는 기록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소리 시인의 어머니 한 분 만의 삶의 역정이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의 슬픈 현대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어머니 세대의 삶은 말의 바른 쓰임새대로 파도가 격랑했던 ‘파란만장’한 삶 그 자체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몇 해 전 그 흉악한 장마에 휩쓸렸어도/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산다고/논밭을 마구 끌고 온 파도를 물리치며/무열이가 휘젓는 장대 붙들고도 살아 나왔지요//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죽을 고비 넘겨 오래 살겠다 했지요/가난을 다스려온 주름진 얼굴엔/몇십 년 만에 뽀오얀 살이 올랐지요//공단 시가지 조성으로 묶인 논/시에서 매입해서 되팔면 평당 3백만 원이라지만/그래도 오래 끌어 평당 30만 원씩/좀 나은 보상도 약속받았지요//뒷산 콩깍지만 하게 남아있는 밭/자식들 밑반찬 거리나 슬슬 가꾸면서/손주들 재롱으로 살아가자 했지요/보상금 타 자식들 전셋집이라도 장만해주어/가끔 둘러보는 재미로 살아가자 했지요” 시집에 실린 시 ‘장대-어머니’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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